라오스로 가는 길
사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가지가지이다. 어떤 이는 휴식이 필요해서, 어떤 이는 자유를 맛보기 위해, 어떤 이는 자아를 찾기 위해. 목적은 제각각이지만 자기 삶의 터전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기대는 같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치유와 힐링을 띠기도 한다. 몇십 년 동안 준비한 여행이 있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떠난 여행도 있다. 어떤 여행은 잊지 못할 상처를 주기도 하고, 평생 살아갈 든든한 힘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당신이 만나는 라오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만나는 라오스는 그동안 살면서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 이를테면 자연의 넉넉함과 푸근한 사람 인심,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를 보여주지 않을까? 이게 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적어도 내게, 아니 우리 가족에게 다가온 라오스는 그랬다.
딸아이가 방학 동안 학교에서 해외 봉사로 라오스를 간다는 말에 농담처럼 라오스에서 보자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연말이라 정산할 게 있었고 일 마무리를 해야 했으며, 처리해줄 일도 쌓여만 갔다. 여행을 생각한다는 자체가 사치에 가까웠다. 아내 역시 매일 몰아닥치는 일에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아내와 나는 점점 지쳐갔다. 처리해야 하는 일의 강도가 다른 여느 해보다 강했기에 새벽에 귀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일이 정리되면서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기로 결정한 게 불과 열흘 남짓. 지금까지 잡은 가족여행 중 가장 빠른 결정이었다. 나는 내심 겨울 삿포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겨울 눈에 파묻힌 삿포로는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지만 추위에 약한 아내는 단호히 내 제안을 거절했다. 다음 목적지로 베트남 나트랑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하필 지금 베트남은 우기이다. 결국 차선책으로 낙점한 곳이 라오스였다. 일단 급한 마음에 포털을 통해 검색해보았다. 다행히 몇 군데 여행사를 훑은 결과 비교적 저렴한 상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일에 지친 터라 제한된 시간 안에 항공권을 검색하고 숙박을 정해야 하고, 투어 일정까지 찾아야 한다는 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종 결제에 앞서 가족들의 의사를 물어보니 아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이유는 패키지여행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따라 붙었다. 내심 마음 한편으로는 방학 늦잠에 길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럼 까짓것 그냥 자유여행으로 가자. 물론 그 선택이 탁월한 결정이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성수기라 항공권이 가장 시급했다. 그동안 여행하며 쌓은 노하우를 총동원해서 찾고 보니 하필 비엔티안(Vientiane) 도착 시간이 밤이다. 한국과의 두 시간 시차를 고려하면 자정 무렵이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저가 항공사를 이용해야 했는데 묘하게도 대부분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후, 밤 도착이었다. 그렇다면 도착해서 하루를 그냥 보내고 다음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정을 조정해서 최대한 늦출 수밖에 없었다. 라오스를 다룬 카페에 들어가 보니 많은 이들이 그날 저녁에 출발하는 심야밴을 타고 방비엥(VangVieng)까지 넘어가는 걸 추천하고 있었다.
사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는 다녀왔지만 라오스에 대해서는 생소했다. 다만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하는 곳이라는 사실만이 어렴풋하게 기억 저편에 남아 있었다. 찾아보니, 인구 650만 명에 불과한 라오스는 상당 기간의 식민지 통치 시대와 내전이 빚은 전쟁의 상흔으로 멍든 나라였다. 1893년~1907년에 맺은 프랑스와 타이 간의 조약에 따라 프랑스는 라오스를 식민지로 삼는다. 오늘날에도 라오스를 식민지로 삼아 군림했던 프랑스의 흔적은 라오스 곳곳에 남아 있다.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루앙프라방(LuangPrabang)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당시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프랑스 통치에 이어 벌어진 2차 대전 중 라오스는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인도차이나 전쟁에 열강이 개입함으로써 라오스 전역은 초토화에 이른다. 여기에 내전까지 벌어짐으로써 이 평화로운 땅은 근 백여 년을 잠잠할 틈이 없었다. 오랜 식민지 시대의 사슬을 끊고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고통이 뒤따라야 했다. 이제 전쟁은 끝났지만 그 흔적은 남아 살아 있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내가 방비엥에서 블루라군을 가면서 오갔던 나무다리 입구에는 불발탄이었음 직한 포탄이 양쪽으로 박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 어디에도 포탄을 조형물로 전시하거나 설치해두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툭툭이를 타고 가며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믿어지지 않았다. 툭툭 때로 뚝뚝이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라오스 고유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그러나 오가면서 몇 번을 다시 보아도 포탄이 맞았다. 동행했던 아내도, 방비엥에서 만난 여행객에게 물어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하기야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불발탄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는 다리 입구에 떡하니 박아두었겠는가.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방비엥 다리에는
불발탄을 다리 입구에 떡하니 세워두었습니다.
터지지 않아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잊지 말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복수의 심정으로 거기 세워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그 허름한 나무다리 위를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과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를 탄 청년과 노인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갑니다
삶이란 게 터지지 않은 불발탄처럼 오는 행운이라면
라오스 사람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터득한
그 소소한 삶의 진리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셈이지요
불발탄은 더 이상 터지지 않으며
참혹한 전쟁도 더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세상이 지옥 같고 사는 게 전쟁 같아서
이곳으로 떠나온 여행객들에게
여기는 안전하다고, 그러니 걱정 꽉 붙들어 매고 살아도 된다고
우리도 그 모진 세월을 이기고 살아왔다고
눈 있으면 이 땅에 폭탄을 이렇게 무참히 뿌린 너희도 와서 보라고
떡하니 박아둔 것이겠지요
- 방비엥의 나무다리 불발탄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150km 떨어진 방비엥은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시골마을이었다. 라오스 지도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길게 늘어진 모습이 한반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라오스를 찾는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곳은 비엔티안, 방비엥, 루앙프라방이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판시돈까지도 대상에 들어간다. 일정이 짧은 이라면 비엔티안-방비엥을, 조금 여유가 있다면 비엔티안 - 방비엔 - 루앙프라방을 둘러보기도 한다. 하지만 방비엥까지가 어림잡아 다섯 시간, 다시 루앙프라방까지 다섯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동에만 꼬박 열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차로 여행하겠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 고속도로를 떠올리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미안하게도 라오스에는 아직 그런 건 없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리는 이유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니라 도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자본이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속철 때문에 도로 개보수 작업은 뒷전이다. 도로가 좋다면야 그나마 견딜만하지만 비포장에, 그것도 움푹진푹 꺼진 땅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부 여행기에 의하면 뒷자석에 앉아 이동하다가 토를 할 정도로 말 다했다. 물론 열 시간 걸리는 버스의 고통을 50분으로 줄여주는 비행의 마법이 라오스에서도 통하기는 한다. 실제로 귀국길에 만났던 여학생들은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까지 무려 12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보통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2시간이 더 걸리는 바람에 그렇게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도로 사정을 아는 나로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국내선 이동을 알아보았으나 1인당 10만 원이 넘다 보니 버스를 택했다고 했다. 어떤 이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겠지만 그 여학생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에는 그런 농담조차 나오지 않았다.
방비엥이 얼마나 작은 동네인지는 한번 쓱 산책하러 다녀보면 안다. 불과 30분 남짓이면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 관광을 할 수 있다지만 동네가 워낙 좁은지라 몇 번 다니다 보면 만난 이를 또 만나는 일이 다반사로 많은 게 방비엥이다. 미리 해외 봉사를 떠났던 딸아이와 우연히 지역 맛집이라는 신닷 식당에서 만났을 정도였다.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잡지도 않았건만 그 머나먼 이국땅에서 뜻밖의 가족상봉이라니. 식당에서 헤어지고 난 이후에도 몇 차례나 길에서, 야시장에서 만나는 바람에 피할 생각까지 했으니 방비엥이 얼마나 좁은 곳인지를 알 만하다.
처음 예정한 대로 방비엥 일정을 마치고 루앙프라방으로 가기로 했다. 대략 소요 시간은 다섯 시간, 15인승 도요타미니밴을 이용한 1인당 요금은 9만 킵. 아침 떠나는 시간까지는 아침을 먹을 시간이 충분했다. 할리스커피 근처에 방비엥 맛집으로 손꼽히는 노네임 레스토랑이 있다. 맞다. 이름이 없다는 의미의 노네임이다. TV 꽃보다 청춘팀이 즐겨 찾았다는 식당은 마침 우리가 찾았을 때는 계속 닫혀 있었다. 신년이어서 그랬겠지만 가게는 출발하는 날에야 비로소 문을 열었다. 그 덕에 아침 식사를 하는 행운을 누렸다. 조식이 포함되지 않은 호텔에 머물다 보니 생각지도 않게 지역 맛집을 경험하는 행운이 오기도 한다. 동남아 쌀국수는 어디 가나 다들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때로는 음식이 맞지 않는 이도 있는 법이다. 만약 음식 때문에 곤혹스러운 이라면 주저 말고 볶음밥을 시키시라. 무난할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기사는 중간중간에 마을에 들러 손님을 태우고 심지어 오이를 사기도 했으며 택배를 흥정하기도 했다. 아무리 밴이라지만 이건 아예 동네 마을버스인 셈이다. 먼지 풀풀 날리는 건 방비엥까지와 비슷했지만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이 그나마 좀 나았다. 밤이면 절대 못 보았을 절경들이 창밖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도착한 휴게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지만 음식에는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다행히 노네임에서 포장해온 스프링롤로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었다.
가보면 알겠지만 라오스에서는 누구나 사진작가가 된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저절로 핸드폰에, 카메라에 손이 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루앙프라방 가는 길은 비포장은 둘째 치고 산길 옆이 절벽투성이여서 고개를 넘어갈 때는 아찔함까지 더 했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면 중간에 잠시 들렸던 휴게소에 펼쳐진 뜻밖의 절경이랄까. 나는 사진 몇 장으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그 풍경을 가슴 한쪽에 담으며 그 순간 거기 있음을 감사했다. 제법 고지여서 그런지 내려오면서 순식간에 몰려드는 산안개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동안 방비엥을 거쳐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를 경험한 나로서는 이 험준한 산에 이런 포장도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9시 무렵 출발한 차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2시가 넘어서야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같이 방비엥에서 넘어온 일행은 저녁 일몰을 보러 간다고 했다. 일정이 짧으면 마음도 급한 법이다. 그들이 간다는 푸시산은 루앙프라방에서는 일출과 일몰로 유명한 장소이다. 이곳을 가고자 하는 이라면 특별히 푸시산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기 때문에 당황할 수도 있다. 야시장이 끝나는 즈음에 멋들어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국립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계단이 바로 푸시산으로 가는 입구이다.
우리가 처음 머문 숙소는 루앙프라방의 여행자거리나 메콩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야시장 구경을 나섰다. 방비엥에서 투어를 하다 보니 돈이 딱 떨어져서 우선 급한 대로 환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방비엥의 정보며 환전, 그리고 투어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할리스커피에 비해 루앙프라방에서는 그런 정보를 쉽게 구할 곳이 없었다.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 할리스커피에서는 환전부터 여행, 투어, 교통편까지 다 한꺼번에 가능했다. 한 번이라도 할리스커피를 다녀온 이라면 다들 사장님의 수완과 몰려드는 손님을 부러워하고 감탄했다. 다행히도 루앙프라방에 하나밖에 없는 우체국 옆 환전소가 믿을 만하다는 소문을 듣고 달러당 8,560킵에 환전할 수 있었다. 곳곳에 있는 사설 환전소가 있는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이곳을 찾는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카드 사용이 마땅치 않은 라오스에서는 어느 정도 현금이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다.
돈도 생겼겠다 야시장을 지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야시장이 시작하는 거리를 지나면 여행자 거리가 나오는데, 이 동네는 루앙프라방을 찾은 온갖 여행객으로 북적인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루앙프라방의 매력은 평범한 골목길만 들어서도 은은한 멋을 자랑하는 고택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식당마저도 평범하지 않다. 라오스에 온 이후 아내의 쌀국수 사랑은 여전하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가격은 15000킵(2,100원), 이토록 저렴한 가격에 사람을 반하게 하는 맛을 찾기란 쉽지 않다. 쌀국수에 똠냥꽁, 볶음밥 등 취향대로 몇 가지를 더 시키면 상은 푸짐해진다. 거기에 시원한 라오비어 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어느새 여행은 한껏 풍요로워진다.
같은 듯 다른 느낌, 방비엥과 루앙 프라방의 야시장
루앙프라방 야시장은 방비엥과는 규모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물건 규모나 종류도 차원이 달랐다. 마치 시골 장터와 남대문시장 정도랄까.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연신 손님을 부르지만 어떤 이는 물건 파는 거에 별 관심이 없는 표정이다. 젊은 친구들은 손님보다는 핸드폰에 더 정신이 팔려 있다. 특이한 것은 눈앞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수를 놓는 이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하기야 핸드메이드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달리 있겠는가? 서툴면 서툰 대로, 아낙의 손에서 라오스 문양이, 젊은 화가의 손길에서 라오스의 한 장면이 피어난다.
재래시장의 매력은 깎는 맛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곳 야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길을 멈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인과 너나없이 흥정을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는 이와 비싼 가격을 받고자 하는 주인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참, 이상한 게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깎지 않고 샀을 사람들이 여기만 오면 흥정의 달인이 되려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깎는다고 해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그리 큰 금액이 아니지만 흥정 자체가 주는 재미에 빠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주인이 못 이기는 척 금액을 부르면 다시 또 다른 흥정이 시작된다. 그렇게 둘 사이에 금액이 오가다가 중간지점에서 쌍방이 만족할 만한 가격에 도달하면 흥정은 끝난다. 여행객은 마치 1+1 상품에라도 홀린듯, 시장을 빠져나오는 두 손 가득 물건이 들려 있게 된다. 흥정 끝에 얻은 전리품인 셈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배가 고파 우연히 찾은 곳이 마침 지역 맛집이었다. 우선 식당에서 한국어로 안내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알고 보니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었다. 특이하게 구운 마늘이 쌀국수에 고명으로 얹혀 나왔다. 국물맛이 담백하고 부담스럽지 않다. 평소 쌀국수를 즐기지 않던 나로서는 국물까지 싹싹 비우는 일이 처음이었다. 거기다 누룽지를 국물에 말아 먹으니 그야말로 별미였다. 느긋하게 아침을 맞았으니 오후에는 루앙프라방의 명소라는 꽝시폭포에 다녀오기로 했다.
대개 루앙프라방 여행의 출발은 조마베이커리에서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처음 루앙프라방에 도착했을 때 기사가 내려준 곳도 조마베이커리 앞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마베이커리 앞에는 툭툭이와 벤이 늘어선 채 손님맞이에 부산하다. 택시가 없는 라오스에서 툭툭이와 벤은 택시 역할을 대신한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꽝시폭포까지는 1인당 3만 킵, 흥정을 잘하면 더 저렴하게 갈 수 있지만 대략 그 정도면 적당한 가격이다. 폭포까지 가는 시간에 다시 2시간 남짓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대략 4시간 가까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만약 호텔에서 예약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내가 묵었던 호텔 복도에서 만난 여행객 3명은 35만 킵으로 꽝시폭포까지 예약을 했다고 했다. 다행히 내 말을 듣고 바로 취소해서 3만 킵짜리 벤으로 갈아타기는 했지만 잘 모르는 여행객이야 호텔 측에 부탁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흥정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라오스.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참 알면 알수록 요지경인 라오스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