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탈리아 피자가 먹고 싶었다. 베트남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피자라니 웃길 수도 있지만 다 사연이 있다. 유럽여행 중, 잠깐 나간 외출 길에서 100년도 넘은 역사를 자랑한다는 제네바의 피자집에 가게 되었다. 제네바의 저녁은 근사했고 우리는 배가 고팠다. 얇은 도우와 바삭한 피자맛이 근사했다. 아내는 가끔 피자가 생각날 때마다 그 집 이야기를 했다. 그날 이후 언젠가부터 모르겠지만 여행하는 지역의 피자집을 찾게 되었다. 지역마다 맛집이 많기는 하지만 정말 잘하는 피자집을 만나기란 쉬운 게 아니다. 도우가 얇으면서도 바삭하고 소스가 적절히 배어 있는 노릿노릿한 피자를 만나는 일은 더 힘들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에서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갔던 피자집은 도우가 얇고 바삭바삭한 맛이 좋았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아마 이런 피자집이 집 근처에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쯤은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지에서 운 좋게 그런 집을 만나게 되면 입만 즐거운 것이 아니다. 화덕에 갓 구워 따끈따끈하게 나온 피자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은 벌써부터 행복해진다.
프리메바라도 우연히 숙소로 가는 골목을 지나다가 찾은 레스토랑이었다. 지나가다 보니 마침 입구에 피자라고 쓴 입간판이 있어서 그 식당이 피자를 판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옆 건물 벽에 노란 벽화가 그려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머물렀던 곳이다. 알고 보니 피자집은 바로 그 옆이었다. 알고 보니 그 동네에서는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입구부터가 마치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계단을 지나 2층으로 향했다. 1층에도 손님은 없었지만 좀 더 한적한 오후를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찾은 2층에는 우리의 눈을 뗄 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창밖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 때문이었다. 온통 건물 벽면 전체가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벽화와는 규모나 차원이 달랐다. 앞으로도 그처럼 멋진 벽화는 내 생전에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건물에서 벽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마 대부분의 벽은 건물의 일부로서 건물을 지탱하는 한 귀퉁이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벽이 없는 건물은 상상하기 힘들다. 나트랑에서 내가 만난 벽화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이 멋진 동네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그 벽화를 보는 순간 생명이 없는 무미건조한 건물이 아니라 초록잎으로 뒤덮인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연신 셔터를 누르다가 자세히 보니 그냥 평면의 밋밋한 벽이 아니었다. 평면도 벽화를 그리기에는 쉽지 않다. 그런데 굴곡이 진 벽이라니 그림 재료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일 자체가 난코스가 아닐 수 없다. 평평한 벽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창 때문이었다. 벽에 창문을 내다보니 평평함 대신에 돌출된 굴곡이 생긴 것이다. 이런 벽에 이처럼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다니, 천재가 아니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피자를 먹으면서도 자꾸만 눈이 향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그 집 피자맛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 피자가 먹음직했다는 것, 하지만 맛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는 느낌만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더 맛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피자맛은 평범했다. 혹시 그 이유가 바로 창밖을 꽉 채우고 있던 그림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실 나는 피자보다는 그림을 보느라 그리고 사진으로 담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쉽지 않았다. 세상에 피자는 많지만 내가 보았던 그림은 오직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아마 피자를 먹지 못했다고 해도 미련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