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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시월 Jan 24. 2017

혼자라는 걸 받아들이는 힘에 관하여

영화 우리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름. 밝은 햇살이 가득한 교정에서 초등학생들이 피구를 한다. 체육시간이다. 한 아이만이 들떠있지 않다.

 피구에서 꼭 거치는 과정인 편 가르기에서 그 아이는 마지못해 선택받았기에 선택받았다고 할 수 없다. 그건 선택받지 않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경험이다.

 예전에 친구였던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있는 외로운 아이, 선이는 여름방학이 정말 간절했을 것이다.



 지아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전학 와서 같은 반 아이들과 아직 인사를 하지 않았다. 선이는 그런 지아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반 친구다. 선이와 지아는 급속도로 친해진다.

 지아에게는 비밀이 많지만 선이는 지아가 그저 좋다. 지아는 선이가 용돈이 모자라서 하지 못 하는 것들을 함께 하고 싶다며 선뜻하게 해 주고, 선이의 어린 동생 윤이와 노는 것도 좋아한다. 선이가 웃는 장면이 많아진다.


 선이는 지아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고 싶어 한다. 지아의 부탁으로 선이의 집에서 지아가 며칠 지내도록 엄마를 졸라서 허락을 받아낸다.

 지아는 자신이 지내는 할머니 댁 보다 훨씬 작은 선이네 집을 좋아한다. 선이 엄마가 가게에 나가 있는 동안 선이와 지아는 윤이와 놀아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개학이 다가오면 선이를 따돌리는 친구들 때문에 지아도 흔들리지 않을까 하며 관객이 아슬아슬하게 선이의 행복함을 지켜보는 사이 갑작스레 둘의 관계는 시작처럼 빠르게 냉각된다. 여름방학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지아는 선이와 친구였지만 지금은 앞장서서 선이를 따돌리고 있는 보라와 절친한 친구가 되어 나타난다. 개학한 학교에서 만난 지아는 선이에게 싸늘하다.


 선이는 지아에게 좋게 얘기해도 보고, 살짝 화도 내어 본다. 선이는 지아와 보라가 다니는 영어학원에 가고 싶어서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걸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학원에 들어간다. 선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선이의 노력은 보라의 조롱거리가 된다. 지아는 선이의 노력도, 보라의 선이에 대한 조롱도 외면한다.  





 영화는 선이와 지아, 보라의 어떤 싸움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싸움의 무기는 각자가 알고 있는 서로의 비밀이다. 그 싸움에서 셋이 얻고 싶은 건 뭘까? 서로를 얻기 위한 싸움은 이미 아닌 것만 같다.


 선이는 지아에게 진심을 전하려고 애쓴다. 그렇지만 지아의 마음이 돌아선 순간이 선이가 지아를 위해 진심을 다하던 그때라는 걸 모른다. 선이는 지아에게 맛있는 오이 김밥을 맛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지아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아의 마음은 다쳤고, 선이의 선의 때문에 마음을 다쳤다는 걸 인정하고 선이에게 털어놓는 것보다 미워하는 게 쉬웠다. 선이의 잘못은 아니지만 지아에게는 가장 아픈 부분이었으니까.





‘우리’라는 말은 공허하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혼자가 된 기분은 말할 수 없이 공허하지만, 결국에는 누구나 혼자라는 걸 받아들이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나이를 먹듯이 차근차근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른 시기에 다른 관계에서 다른 아픔으로 찾아온다.  


 이 영화에서 선이, 지아, 보라가 고군분투하는 감정의 결은 성인들이 겪었었고 계속 맞닥뜨리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어떻게 맺고 지속시킬 수 있을지 냉철하게 질문하는 이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사람이 성장하면 관계 맺기도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뻔한 결론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아플 걸 알면서도 ‘우리’가 되고 싶은 세 아이에게(또는 관객들에게) 다른 좋은 답을 제시하는 건 녹록지 않다. 희망은 주인공 선이의 선택으로 표현된다.


 영화의 끝에서 선이는 알게 된 것 같다. 사람은 혼자고, 혼자라는 걸 견딜 수 있을 때 단단한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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