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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시월 Jan 17. 2019

대공이 다스리는 나라

전시회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경복궁에 가는 길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가끔 왕가에 관련된 아름다운 물건들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다.

 규모가 작은 전시를 주로 해서 잠깐 쓱 보고 나오곤 했는데, 이번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전시회는 세 개의 전시공간에서 열리는 제법 큰 규모였다.

 1층 2개, 지하 1개 전시회장을 모두 둘러보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 것 같다.




 리히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위치한 공국-대공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1609년 카를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대공 작위를 받고 셀렌베르크, 파두츠 지역을 구입하여 통치권을 인정받으면서 역사가 시작된 유서 깊은 국가다. 가문의 성을 국가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입헌군주국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로 크기가 서울의 1/4 정도라고 한다. 한때는 현재 국토의 11배에 달하는 규모였다고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하는 모든 영지를 몰수당했다.

 금융업 중심지로 국민 1인당 GDP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팸플릿에 따르면 국가 예산을 왕실에서 부담해서 국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단다-대박!


 


 900년 역사를 이어온 왕실은 지속적인 예술 후원과 미술품 수집으로 왕실 컬렉션을 만들어왔다-진정한 수집가...

왕실 컬렉션 미술품들과 실제로 궁전에서 사용되었던 예술품에 가까운 가구들, 옷, 기사단 훈장 등이 이번 전시회에 왔다.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챕터 순서대로 살펴보자.




1.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역사


리히텐슈타인을 통치했던 대공들의 초상화와 가문의 깃발, 가문을 상징하는 예술품,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통치권을 인정받은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올 것 같은 양피지에 잉크로 쓴 문서들이 고스란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왼쪽은 알로이스 1세 대공비의 모습을 무지개 여신 이리스에 대입해 그린 초상화이다. 그림의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서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오른쪽은 왕자의 아내라고 쓰여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그림이 서로의 옆에 걸려있는 모습이 해와 달이 함께 있는 것처럼 완벽했다-대공비가 웜톤 여신 느낌이라면 왕자의 부인은 쿨톤 여신 느낌.






연수정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었다는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의 '마이엥크루' 라는 트로피 모양의 뚜껑 달린 병. 참 아름다웠다.






마리아 테레지아 기사단, 황금 양모 기사단 등 당시 유럽 귀족들에게 영예였던 기사단 훈장도 전시되어 있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귀족 가문으로 시작되었으나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서 대공 지위에 올랐다.


신성로마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책을 맡았던 것으로 볼 때 정치와 외교에 수완이 있었던 것 같다.


전쟁에서 사용한 무기들과 당시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대포에 대한 관심으로 수집한 정교한 모형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오스만투르크와 종교전쟁-이슬람VS카톨릭-을 치렀으므로 오스만투르크군의 무기와 적을 설명하는 팸플릿들도 수집되어 있었다.  


 



2.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생활문화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빈 근방 귀족 가문으로 시작해 왕가로 승격되었다.

 그 시대에는 통치자를 '신의 모습'으로 여겼기에 리히텐슈타인의 대공들도 품격 있고 화려한 생활을 추구하며 일반인들과 구별되려 했다. 그 일환으로 유명한 건축가에게 의뢰해 아름다운 궁전들을 지어 거주했다고 한다.





 


궁전에 놓였던 긴 소파와 샹들리에 등 그 자체로 예술품인 가구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푸른색 자수가 놓인 긴 소파는 한 번 누워보고 싶을 정도로 쌩쌩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푹신해 보였다.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도자기에 유럽 왕실 취향으로 도금 장식을 덧붙여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새장에 촛대를 둘러서 샹들리에로 만든 소품은 아름다웠지만, 진짜 새를 넣어뒀었다면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히텐슈타인 왕실에서 선호했다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장식한 서류 보관함 등 실제로 사용된 물건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렇게까지 예쁠 일인가 싶었다.

 피에트라 두라 기법은 색색깔의 돌로 짜 맞추듯 그림을 완성하는 양식이다. 자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매혹적이었다.






3.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도자기와 식기





도자기도 중요한 수집대상이었다고 한다. 중국, 일본에서 수입되던 도자기를 사들이다가 1718년 빈 도자기 공장이 설립되고부터는 그곳에서 제작한 도자기를 주로 구입했다. 만찬에 어떤 식으로 도자기와 은식기가 쓰였는지 기다란 테이블을 놓고 차려놓은 코너도 있었다.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들의 정교함에 감탄했다. 초상화를 도자기로 모사한 것과 장식용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접시들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도자기는 옛날 물건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색이나 질감, 무늬도 그렇지만 얇고 깨지기 쉬운 도자기가 오랜 세월을 견뎌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모습이 묘한 감동을 준다.




4.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말 사육과 사냥


말 사육과 사냥은 유럽 귀족 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왕가에서는 좋은 품종의 말을 기르고 다루는 능력이 중시되었고 승마학교도 세웠다. 왕족들에게 사냥은 취미이자 운동이었고 전쟁을 대비한 훈련이었다고 한다.


군다커 폰 리히텐슈타인은 말 사육에 대한 책을 출간했는데 다른 유럽 귀족들도 그러했다고 한다-말 덕후...

승마와 사냥에 사용되었던 마구나 석궁도 자수를 놓거나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어서 예술품처럼 보였다.

좋은 말에 자부심을 느꼈으므로 그림으로 그 멋진 모습을 남겨놓았다.





5.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미술품 수집과 후원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가 미술품 수집을 위한 지침을 마련했다는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 관련된 그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크리스토파노 알로리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박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피에르 야고보 알라리-보나콜시의 <사자 가죽을 두른 헤라클레스>는 주물 조각인데 눈빛과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섬세하게 표현되어있어서 놀라웠다.




고급진 취향으로 하는 사치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전시였다.

전시회는 2월 10일까지 라고 한다.

아름다운 그림과 도자기, 가구들을 만끽하러 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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