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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시월 Dec 27. 2018

국가의 서사가 스트레스를 생산하는 법

책 남보다 더 불안한 사람들


발달심리학자 대니얼 키팅의 책이다.


대니얼 키팅은 발달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미시간대학교 교육대학원 심리학, 정신의학, 소아학 교수이다. 40년 동안 인간의 발달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을 연구해왔다. 특히 청소년의 인지 발달과 뇌 발달 과정이 위험 행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와 발달 건강의 관계를 비교해 어떤 환경이 발달에 유리한지를 밝히는 연구를 수십 년 동안 진행했다.

특히 다학제 연구를 지원하는 싱크탱크인 캐나다고등연구소 Canadian Institute for Advanced Research에서 20년 동안 인간 발달 연구 프로그램 Human Development Program을 이끌며 심리학, 정신의학, 사회역학, 신경과학, 영장류 동물학자들과 함께 유전되는 불안과 스트레스의 메커니즘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출처: YES24 저자 소개글





우울, 불안을 주제로 한 에세이들과 비슷한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하고 있어서 자기 전에 가볍게 읽을거리로 집어 들었다.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는 책이라는 걸 모른 채...


이 책은 가벼운 에세이가 아니라 전문적인 발달심리학 연구의 대중적 판본에 가깝다.


책이 쓰인 배경부터가 캐나다고등연구소에서 수행된 '인간 발달에 대한 연구' 라니 말 다 했다.


다행히 저자의 글솜씨가 좋고 연구대상이 인간 사회라는 것 덕분에 가독성이 그럭저럭 괜찮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스트레스 메틸화'다.


'메틸화'는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기능에 생긴 변화를 말한다.


'스트레스 메틸화'는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을 껐다 켜는 스위치 유전자(NR3C1)가 늘 켜진 상태가 되는 메틸화를 뜻한다.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은 위협에 반응하기 위해 켜졌다 꺼졌다 하는데, 이 시스템이 계속 켜진 상태로 살아가면 몸에 유해하다고 한다.


언제나 위협이 옆에 있는 것처럼 긴장하고 살아간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심리적, 육체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수명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마디로 스트레스가 정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유전자 기능의 변이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후성유전학과 사회학, 발달심리학 등 여러 분야를 접목시킨 결과물이다.  


저자는 스트레스 메틸화가 된 개인의 발달 단계를 태아에서부터 성인까지 그려가면서 그러한 아이들에게 적합한 양육방법과 부모의 마음가짐들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생애 초기의 역경과 스트레스 메틸화의 관계를 강조한다.


임신부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태아에게 스트레스 메틸화가 나타난다. 생후 1년도 아기에게 스트레스 메틸화가 일어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그다음 스트레스 메틸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관계를 밝히고 정책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사회의 안정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스트레스는 전염성이 있어서 스트레스 메틸화가 되지 않은 사람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살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도 떨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스트레스 메틸화가 된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유전되기 때문에(3세대까지 유전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도 같은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주로 미국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데 의료보험 같은 보편적 복지에 주목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을 구성하는데 드는 비용이 그러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보다 적다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든다.



'국가의 서사'라는 관점으로 정책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국가의 서사'라는 건, 국가가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말하는 세계관을 얘기한다.



의료, 교육, 생계 등의 기본적인 복지가 시민의 권리라고 말하는 국가는 사회적 불평등이 완만하다.


국가가 국민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면 누구도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국가(미국)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이 훨씬 가파르며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수명 차이로 나타난다.


또한 같은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계층에 따라 수명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이 유럽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사회적 안정망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의료보험제도를 빼면 우리나라는 더 한숨만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소득 재분배', '보편적 복지'라는 말이 나오면 민감해지는 여론-그리고 복지 제도를 이용해서 부당하게 부를 쌓는 극소수를 부풀리는 언론-을 고려해서 좀 더 거부감 없는 방식으로 어떤 정책들을 할 수 있는지도 제안하고 있다.



개인이 스트레스 메틸화가 가져온 '스트레스 조절 장애'를 극복하려면 마음챙김과 함께 사회적 연결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각자도생'이 오랫동안 국가의 서사였던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연결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책이다.



스트레스 조절장애가 있는 아기의 부모들이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고, 정성을 쏟아도 반응이 없는 아기에게 절망감을 느낄 수 있다고 얘기해주는 등 괜찮아 보이는 조언들이 있어서 부모들이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다.













'상황이 나빠지면 국가가 보살펴줄 것이라'라는 기대를 심어주는 나라가 있다.

사실상 그런 나라는 그것이 시민권 그 자체라고 여긴다. <남보다 더 불안한 사람들> p.234




우리는 미국인이 사회적 지원을 대체로 공적 자선으로 보는 반면,

캐나다인은 권리로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보다 더 불안한 사람들> p.249



뻔해 보이지만 반드시 챙겨야 할 점은 정책 결정의 결과들을 정기적으로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정보에서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결정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특히 사실의 진실에 대한 의심이 범람하는 이 포스트 모던한 세계에서는 말이다. <남보다 더 불안한 사람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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