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
일본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심리학 대중서 시장의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는 매우 많은 책을 썼고 국내에 번역된 책들도 상당수이며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최근에는 <예민함 내려놓기>와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가 번역되어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오카다 다카시의 저서를 여러 권 읽어서 크게 끌리지는 않았는데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에 국내 정신과 의사의 추천사가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임상적으로 진단받는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를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책이다. 양극성 장애 2형을 우울증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강조하고 있다.
오카다 다카시의 다른 저서보다 한 챕터의 길이가 길고 전문적인 내용이 많은 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더 많이 걸리는 원인을 호르몬에서 찾는 챕터는 읽으면서 뜨악했다.
얼마 전에 읽은 <호르몬의 거짓말>에 나왔던 '여성은 호르몬 때문에 미친다'는 호르몬 신화를 구축하는 서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을 인용해보자.
'이와 대조적으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항우울 작용을 한다. 자신감과 에너지를 키워 활동성을 높이고 불안과 스트레스를 억제한다. 남성은 외부의 적과 싸워 여성과 아이를 지키고 자손을 남기기 위해, 불안과 공포를 무릅쓰며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와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부여받은 것이 바로 남성호르몬이다.'
???
테스토스테론이 항우울 작용을 한다는 근거를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연구결과로 증명되지 않았다면, 진화 과정에서 남성이 여성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 황홀하게 훌륭한 호르몬을 부여받았다는 건 저자의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정신과 의사라면 발언에 권위가 실린다는 거다.
저자의 주장대로면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연령대의 남성들은 우울증 치료제로 테스토스테론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남성들이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호르몬 요법을 받는다고?! 무슨 여성용 비타민, 남성용 비타민처럼 여성용 우울증 치료제와 남성용 우울증 치료제가 따로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린지...
<호르몬의 거짓말>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2배 정도 많이 걸리는 원인을 사회적 불평등에서 찾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남성 중심사회에서 살면서 남성보다 부와 명예를 적게 가지고 있으니 우울하지 않을 턱이 없다는 얘기다.
중상위층 보다 하위층 사람들이 우울증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울증의 정확한 원인이 둘 중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난 저자의 이론보다는 사회적 불평등 때문이라는 이론이 더 말이 된다고 본다.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
라는 고민이 있을 때는 직접 신경정신과를 찾아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몇 년을 치료한 의사도 명확한 원인이나 정확한 병명을 말하기 쉽지 않은 게 우울증이다-현대의학으로는 그러하다.
우울증은 바이러스가 들어와 독감에 걸렸을 때처럼 육체적인 검사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단과 치료가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들을 '우울증이라는 범주'에 넣고 효과가 있는 약물을 찾는 것에 가깝다.
좋은 의사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정신과에 다닌다는 게 알려지면 미친 사람 취급받을까 봐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분명 병이므로 스스로 진단을 내리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우울증도 다른 모든 병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치료하면 훨씬 빠르게 나을 수 있다고 한다. 일찍 병원을 찾자.
본인이 주위 사정을 고려해 무리를 하면 할수록 결국 회복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 p.259
벡은 일단 환자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을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라는 관점에서 그 기록을 환자들과 함께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인지치료다. ‘계기가 된 사건’, ‘그에 대한 감정과 행동 반응’,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는가’, ‘결국 어떻게 되었나’ 등의 항목에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치료자와 함께 검토하는 것이 인지치료의 일반적인 방법이다.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 p.283
실제로 투병 중인 환자가 있다면 병의 원인이나 치료법과 관련된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좀 더 적극적인 마음으로 치료를 받아 전문가와 함께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발견해나갔으면 좋겠다.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 p.352
일본에서는 연간 3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이 12년간 이어지고 있다. 향후 인구의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상황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회 자체가 크게 변화해야 하며, 약물 처방보다 사회적 차원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선생님, 저 우울증인가요?> p.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