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에 대한 만족감을 묻는 질문을 마주하고 있자니,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계속해서 머뭇거리고만 있었습니다. '회사'라는 단어와 '만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상충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일하는 곳을 꽤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휴.. 회사가기 싫다... / 출처_볼빨간사춘기 워커홀릭 뮤비 중
다른 사람들은 '회사'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어떤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위엔 '회사 가기 싫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거든요. (특히 일요일 저녁에는 더더욱 말이죠)
출처_볼빨간사춘기 워커홀릭 뮤비 중
그렇다면 사람들은, 아니 저는 왜 회사에 가기 싫을까요? 회사는, 직장은 삶에 있어서 꽤 중요한 요소인데 말입니다. 새내기 시절 배웠던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을 떠올려봅니다. 그는 사람들의 동기는 욕구에 의해 부여되며, 그 욕구는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했죠. 그 욕구 피라미드의 최상단에 있는 게 바로 '자아실현 욕구'입니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무언가를 성취하고, 성장해가며 자신을 완성하고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 말입니다. 특히 저처럼 성취감과 인정 욕구가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는 사람에게 회사는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장이기도 한데, 저는 왜 회사에 가기 싫을까요?
출처_볼빨간사춘기 워커홀릭 뮤비 중
아마 회사는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겠죠.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회사는 제가 사랑하는 여러 욕구들을 누르고서 힘겹게 가는 곳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침잠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미루고만 싶은 게으름을 누르고, 때로는 나의 솔직한 감정과 주장, 즐거움을 눌러야 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을 누르고 회사가 주는 과업들을 우선으로 처리해야 하니 가기 싫을 수밖에요.하지만 가지 않을 수도 없는 곳입니다. 생계를 이어가는 데 꼭 필요한 곳이자, 인생에 의미를 주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꼭 가야 한다면,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의 교집합이 조금이나마 큰 곳에서 일하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가기는 싫지만 만족합니다
직무적합도, 워라밸, 사내 분위기. 이 3가지는 제가 취업준비생 시절 회사를 고를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들입니다. 성취와 성장에 대한 욕구가 컸기에 저는 제가 일을 잘 배우고, 잘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직무적합도를 1순위로 고려했고, 한 달간의 인턴을 하며 꼼꼼하게 고른 회사가 바로 지금의 직장입니다.하고 싶었던 직무, 그리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 가이드를 줄 수 있는 선배들이 있는 이곳은 꽤 만족스러운 일터입니다.
저희 회사, 뷰 하나는 참 좋습니다:)
혹독했던 2번의 인턴을 통해 여유를 사랑하는 사람이 여유를 뺏겼을 때 느끼는 우울감에 대해 뼈저리게 경험했던 터라 워라밸 역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인턴 시절, 퇴근 후 마주했던 밝은 하늘과 사랑에 빠져 이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입사 후엔 왜 때문인지 좀처럼 퇴근하지 못하고, 마치 짝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창밖 너머 하늘을 아련히 바라만 보고 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죠. 하지만 마음먹자면 눈치 보지 않고 회사를 나설 수 있는 곳이긴 합니다.
왜인지 짝사랑만 하고 있는 회사뷰..
대행사 인턴 시절, 가파른 수직 구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 있습니다. 상사의 취향에 따라 김치찌개 하나에 소주 열 병 마시는 걸 미덕이라 여기고, 능력보다는 그 자리에 함께 했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사무실에서보다는 회식 자리에서 더 많은 컨펌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본인들의 기준에 저도 동의해줄 것을 바라는 눈치였지만, 저는 거기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었죠. 그때 분위기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가가 작게는 성과를, 크게는 한 사람의 성장을 결정한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죠. 그래서 내 주장을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고, 합리적이고 유연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의,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꽤 많이 받는 스펀지 같은 사람이기에 시작은 더더욱 유연한 분위기의 회사에서 하고 싶었죠. 그런 측면에서도 이 회사는, 그리고 이 팀은 꽤 괜찮은 곳입니다.
상담학 사전에 따르면 '만족'이란 개인과 작업환경의 조화에 대한 개인의 내적 지표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실제적인 요소들보다도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와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또한 만족도겠지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하나씩 따져보았을 때 제가 다니는 일터가 꽤 만족스러운 것을 보면, 저와 회사의 조화가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기는 싫지만, 꽤 좋게 느껴지는 곳에 매일 출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