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북적북적한 사람들 무리에 휩쓸려 출근길에 오릅니다. 한 시간 정도를 이동해 힘겹게 도착한 회사에서는 숨 돌릴 새도 없이 업무를 쳐내며 시간을 보내죠. 정신 차려보면 퇴근 시간,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면 마음이 조급해져 옵니다. 저도 얼른 집에 가고 싶으니까요. 조금 더 속도를 내어 일을 처리합니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짐을 싸 얼른 회사를 나섭니다. 긴장이 풀린 노곤한 퇴근길, 운 좋게 차지한 자리에서 밀려오는 졸음을 뿌리치지 못하고,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어느새 익숙한 역에 도착합니다.
출처/ 폴킴 '카톡' 뮤직비디오
이렇게 힘을 다해 살아가는 매일,
저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요?
과연 저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요?
오! 좋은데?
출근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저는 네모난 창 안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네모난 모니터 속에 띄워진 네모난 창들, 그리고 각지고 딱딱한 텍스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죠. 저는 이런 딱딱한 텍스트들을 다듬어 매끈한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출처/ 폴킴 '카톡' 뮤직비디오 (사진=회사에서의 나)
어떻게 매끈하게 만드냐구요? 먼저 원하는 모양으로 텍스트들을 모아 틀을 만듭니다. 작품을 볼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이 틀은 내용물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지 않도록 잡아줄 기준점이 되어줄 겁니다.
틀 안에 텍스트들을 모았다면, 이제 아이디어를 넣어 잘 뭉쳐봅니다. 어떤 컨셉, 어떤 아이디어를 얼마나 탄탄하게 더하느냐에 따라 힘이 있는 작품이 탄생하죠. 이 아이디어를 더하는 과정이 바로 매끈한 작품을 만드는 핵심입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더라도, 고민의 정도에 따라 담기는 인사이트가 다르기 때문이죠.
저는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면 네모난 세계를 탈출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의 노트에 펜으로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을 둥글둥글, 꼬불꼬불 적어가다 보면 새로운 아이템들을 종종 얻기도 하거든요.
아이디어를 다 더했다면 이제 전체적으로 다듬고 광을 낼 시간입니다. 현실성을 더해 테두리를 다듬고, 디테일을 더해 광을 내면 작품이 완성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의 종류는 꽤 다양합니다. 나름의 위트를 조금 섞어서 완성한 디지털 컨텐츠부터, 맞춤법 하나하나 꼼꼼히 신경 쓴 기사, SNS 채널에 올라갈 조금은 가벼운 사진과 글들, 감성 듬뿍 담아 그려낸 매장용 전시 문구, 널리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 꾹꾹 담은 바이럴 컨텐츠 가이드까지. 완성된 각각의 작품들은 다양한 곳에 걸려 제 역할을 해내겠지요.
더 좋은 작품을 위해 아이디어를 찾으며 고민할 때,
이렇게 나온 아이디어로 완성된 내 기획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이 작품들을 보고 나 스스로도 꽤 만족스러울 때,
이걸 본 사람들도 나쁘지 않다며 반응을 보일 때 나오는 한 마디.
'오! 좋은데?'
바로 이 한 마디가 제가 작품을 완성하는 비결이자, 저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힘입니다.
아... 뭔가 좀 아쉬운데?
딸깍, 짧은 클릭 소리 너머 문서창이 열립니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듯이 시선은 반사적으로 문서창을 빠르게 가로질러 갑니다. 앗, 아직 문서가 조금 남았는데 신호가 바뀌었네요. 얼마 가지 못해 브레이크를 밟고야 맙니다.
'아... 뭔가 좀 아쉬운데?'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곤 입을 앙다물며 다시 한번 더 문서를 빠르게 스캔합니다. 다시 봐도 뭔가 아쉽네요. 잠시 비상등을 켜고, 문서 곳곳에 노란 딱지들을 부착합니다.
사실 그냥 넘길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는 사소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컨텐츠 자체를 아무도 못 볼지도 모릅니다. 워낙 볼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쉬움에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기어이 그 자리에 멈춰 서고야 맙니다.
가끔은 '내가 좀 예민한가?', '일을 사서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들이 모여 각 작업의 완성도를, 그리고 브랜드의 느낌을 완성하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아쉬움 역시 저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