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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May 10. 2020

대체 왜 그렇게 야근을 하냐구요?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2)


오후 다섯 시 반, 잔잔히 멈춰있는 듯했던 사무실의 공기가 갑자기 넘실거리기 시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 편에 앉아있던 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더니 미소 띤 얼굴로 굿바이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침과는 다른, 비교적 경쾌한 인사말과 함께 슬슬 사무실이 비어가기 시작하면 묘한 박탈감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대체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간 걸까요? 오늘도 출근과 함께 칼퇴를 다짐하며 시작했건만, 역시나 실패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해지기 전에 가야지!! 시간 임박!


'휴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밀려오는 박탈감을 다시 밀어내봅니다. '오늘은 해지기 전에는 가야지'라고 목표를 재조정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부디 단거리 경기가 되길 바라며 다시금 키보드 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정신없이 레이스에 몰입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 장난 열매를 다섯 개는 먹은 듯한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저 가요~!"


매일 같이 야근하던 대리님이 장난기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놀리듯 자리를 떠나네요. 휴... 야근 메이트가 사라졌습니다. 또 한 번의 허탈감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저도 같이 자리를 뜰 수 없다는 사실에 서글픔이 듭니다. 그리고 서글픔과 함께 빼꼼히 물음표 하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출처/ 폴킴 '카톡'뮤직비디오


대체 저는 왜 야근러가 된 걸까요?

저는 대체 왜 그렇게 야근을 하고, 심지어는 주말에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요?






마음의 짐

제 마음 한 편에는 짐들이 놓여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짐을 놓는 자리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크기도 모양도 다른 짐들이 점차 쌓이기 시작하더군요. 없어지지도 않고 자꾸 쌓여만 가는 이 짐 더미는 제게 꽤 신경 쓰이는 존재입니다.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회사에서의 모든 시간은 이 짐들을 치우기 위해 사용합니다. 저는 꽤 성실한 청소부인 편이지만, 저 혼자 치우기엔 양이 꽤 많아보이네요. 열심히 치운다고 치우는데도, 결코 다 치울 수 없는 양의 짐들은 제가 집에 쉽사리 갈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왠만하면 "그냥 내일 해야겠다!" 스킬을 시전하는 편입니다.  퇴근을 너무 좋아하는 집순이인데다가, '내일의 나'를 꽤 신뢰하는 편이거든요. '내일의 나'를 꽤 과대평가하는 편이라서, 종종 많은 일들을 '내일의 나'에게 넘깁니다. 그럼에도 제가 야근을 자처하는 날은 '내일의 나에게 미루기' 스킬을 도저히 쓸 수 없는 데까지 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그냥 여기서 가버리면 내일의 내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남아서 일을 합니다.

출처 / 폴킴 '카톡' 뮤직비디오


짐들 중 일부는 처리 방법이 꽤나 까다롭습니다. 혼자서 해낼 수 없어 여러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죠. 이렇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일은 적절한 타이밍에 피드백을 잘 넘겨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곳에서 트래픽이 생기기 시작하면 다른 곳에서도 업무 트래픽이 생기게 되니까요. 다른 사람들의 길을 막는 교통체증의 주범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음 날의 트래픽 없는 원활한 업무 드라이빙를 기원하며 야근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업무 교통체증.jpg (피드백 언제 줄 거냐구!!)



짐들에는 청소기한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쌓여있는 짐들은 대부분 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나가 버린 것들입니다. 업무가 너무 많아 처리했어야 하는데 미처 다 못했던 것들이거나,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 보니 자꾸만 밀리게 되는 것들, 혹은 급하고 중요한데 미처 챙기지 못하고 놓친 짐들이 너저분하게 쌓여있습니다.


뭐가 되었든 마음의 짐은 꽤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은근히 무겁고 걸리적거려서 집에 돌아와서도, 심지어는 주말에도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들죠. 그 불편함이 극에 달할 때 저는 일을 시작합니다. 업무시간이 지나더라도, 심지어는 업무시간이 아니라도 말이죠.


일하는 건 별로지만, 정체 모를 부담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건 더 별로거든요. 할 일의 목록을 정리해서 내가 치워야 할 짐의 크기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불편감이 해소됩니다. 거기에 마치 요리 재료들을 준비해놓듯 내일 할 업무들을 얼마간 세팅해놓으면 믿을 구석이 생긴 기분이 들어 조금 뿌듯하기도 합니다.


중요하지 않아 계속 밀리고 마는 일들은, 사실 밀려도 상관은 없습니다. 기한이 명확하게 표기되지 않은 짐들도 많거든요. 다들 바빠서 당장 치우지 않아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요. 그래서 실제로는 갈 수 있는 끝까지 밀리는 편입니다. 어차피 밀릴 거 편히 잊어버리고 미뤄버리면 될 걸, 왜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걸까요?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ㅠㅠ


청소 당번의 업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하지 않았다는, 내 책임을 마땅히 다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불편한 마음 말이죠. 내가 청소를 미룸으로 인해 늦어지는 다른 일들에 대한, 그리고 담당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거든요. 누군가가 이 짐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다면 꽤 미안할 것 같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동료에게 미루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의 짐 저를 움직이게 하는 주요 동력원인 것은 확실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생활,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달달한 간식 연료 삼아 마음의 짐을 치우는 중




++

가만히 들여다보니, 개별적인 업무 하나 하나를 대할 때의 태도에서는 정적강화(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행동 증가)가,


조금 더 큰 관점에서 일을 할 때는 부적강화(원하지 않는 상황을 제거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행동 증가) 주요 동기라는 게 신기했던 1인이었습니다.



정적강화로 열정 폭발한 직장인 이야기 보러가기

>> ep.6 저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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