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앞으로의 목표와 포부를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하십시오."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를 꼽자면, 아마 입사 후 커리어 패스를 묻는 질문일 겁니다. 저 역시도 이 질문에 유독 쩔쩔매고는 했습니다. 내가 지원한 직무가 뭘 하는지도 아직 제대로 모르고, 같은 직무더라도 이 회사 내에서는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그리고 팀 내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입사 후 포부 문항에 답을 쓰고 있노라면 마치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엔 그런 뜬구름 잡는 답변들로 어찌어찌 입사하게 되었지만, 지금 다시 그 시절의 자소서를 보고 있노라면 참 택도 없는 소리를 패기 넘치게 잘 써놨다 싶습니다. 하지만 잘 넘어갔다 싶었던 이 물음표는 입사 후 시간이 흘러 다시 빼꼼,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엔 일단 패기로 밀어붙여 넘겼으나, 실제로 입사를 하고 나니 다시 길을 잃었거든요. 5년 후, 10년 후, 저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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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3년 차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도 아직 미래의 제 모습이 어떨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취준생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주변에 참고할 만한 선배들이 많아졌다는 점이죠.
취업할 때는 내가 무슨 일을 할지, WHAT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다면, 직장인이 된 지금은 HOW에 대해 고민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매일 쉴 새 없이 쌓이는 업무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쌓여 실력이 되고, 그 사람의 커리어 패스가 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전 그 HOW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나둘씩 나만의 이정표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목표_'좋은 동료'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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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번째 목표는 '좋은 동료'가 되는 것입니다. 저의 첫 번째 이정표가 되어준 그녀는 '선배님'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채용 과정 중 하나였던 한 달간의 인턴기간당시 제 담당 사수가 바로 그녀였습니다. 사실 그녀와의 첫 만남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어색한 눈빛과 인사가 오갔던 시간이었겠지요. 하지만 그런 기억을 모두 건너뛰고, 제가 그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첫 번째 기억은 꽤 따스합니다.
회사에 대한 첫인상은 회색빛이었습니다. 딱딱하고 조금은 어두운 사무실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도 제가 배정받은 팀의 분위기는 유독 차갑고, 싸했습니다. 하필 팀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캠페인 기간에 제가 인턴을 하게 되었거든요. 입사 후 처음 참관한 팀 회의는 태풍 같았고, 회의가 끝난 뒤 팀원들은 거센 바람에맥없이 쓰러진 나무들 같았습니다.
그런 사이에서 그녀는 놀란 저를 이끌고 밝은 햇살이 창가를 가득히 채우고 있는 1층 카페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인턴을 미소로 보듬으며, 펜을 꺼내 들었죠. 흰 종이에 또박또박 글씨를 써가며 팀의 구성원과 담당 업무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녀의 펜 끝을 따라 브랜드가 이제껏 어떤 활동들을 진행해왔고,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속성 과외를 받고 나니 마치 어두운 길 한가운데서 가로등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인턴에게 그녀의 속성 과외는 든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그녀에 대한 저의 첫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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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에도 그녀는 저의 든든한 가이드가 되어주었습니다. 첫 번째로 맡은 단독 프로젝트 회의를 마치고, 멘붕이 되어 회의실을 가까스로 탈출한 저를 보며 무슨 일이냐고 다정히 물어봐 주던 그녀의 모습 역시 꽤 기억에 남습니다. 자초지종의 상황을 들은 그녀가 흰 종이에 특유의 정갈한 글씨로 회의 내용을 차근히 정리하니,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눈에 보이는 마법을 경험했죠.
그 이후로는 같이 진행했던 일이 없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그녀는 여전히 제게 다정한 선배이자, 동료이고 닮고 싶은 이정표입니다.그녀처럼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다정히 물어주고, 또 든든한 위로를 전하는 후배가, 동료가, 선배가 되는 것이 입사 후 제가 세운 첫 번째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