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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Mar 25. 2016

죽음에 관하여

소설.

     죽음에 관하여

오휘명-<레토르트 노벨 레스토랑> 中



늙은 시인이 호상을 맞았다.     

 “글쎄, 호상일까.”     

 여제자는 작게 말했다.

 문상객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작 선생님은 더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더 살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꽃이니, 봄의 흙냄새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주로 썼던 시인의 마지막은, 정작 추운 겨울에 찾아와버렸고, 그곳에서 맡을 수 있는 것은 네댓 개의 향이 뿜는 향냄새와, 육개장이나 전 같은 기름진 음식들의 냄새들뿐이었다.

 시골에서 치러진 작은 장례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득실댔다. 흔치 않은 소란이었다.     

 은색 쟁반에 음식과 술을 나르던 중년의 여성 한 명이 마룻바닥에 자빠졌다. 음식들이 나뒹굴었다. 제자는 작게 웃었다.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만 같아서.

 그녀가 못된 것만은 아닌 것은, 실제로 소리 내어 웃어버린 문상객들도 몇 보였기 때문이다.

 시골의 맑은 겨울 냄새가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고, 땅에선 향과 음식의 냄새가 뿜어져 올라간다.

 사람들은 떠들었고, 늙은이의 시를 읽었고, 가끔 웃었다.

 그것은 축제 같기도 했다.     

 시인의 여제자는 파란 대문의 밖으로 나와, 적당히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았다.

 살색에 가까운 화장하지 않은 입술에 담배를 갖다 댔다. 고급차의 납작한 배기관처럼 적당히 벌려진 입술에선 이내 연기가 나왔다. 제자는 그렇게 서서히 폐를 죽인다.     

 “적당히 호상인 것 같기도.”     

 노인은 ‘죽음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꽃을 흉내 내고, 봄의 흙을 흉내 내며 춤을 추는 시인에게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공연의 모든 순서는 지나가고, 노인은 인사한다.

 그리곤 무대의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 커튼이 내려오는 경계를 넘었다.

 순식간에 새까만 암막 커튼은 촤라락 쏟아졌고, 무대는 마치 별 하나 없는, 갓 팽창한 우주의 공간처럼 텅 비어버린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박수와 웃음을 보내주었다.

 잔치인 것 같기도 했다.     

 떠난 이가 주최한 ‘죽음의 잔치’는 끝이 나고, 그곳의 모두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

 아침이면 밖으로 나가 소일거리를 했고, 해가 질 때쯤부턴 시를 썼다.

 검붉은 색에 가까운 입술에는 가끔 담배를 물었다. 별 것 아니었던 담배는, 선생의 죽음 이후 이따금씩 ‘죽음’의 상징으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늘상 그녀의 입술을 예쁘다고 해주었다.

 누구 딸 아니랄까봐, 넌 입술이 참 예뻐, 그러니까 항상 말이든 노래든, 예쁜 것만 뱉으며 살아라.

 그리고 어머니는 오래 못가 급작스레 사고로 죽었다.          

 죽음의 무대에서 어떤 갓난아기는 아장아장 암막 커튼의 뒤쪽으로 홀로 기어갔고, 화가는 그림처럼 죽고, 시인은 시처럼 죽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위해 만든, 여전히 그녀의 냉장고 한구석에서 푹 쉬어버린 김치처럼 죽었다.     

 그녀는 예쁜 말과 아름다운 노래 대신, 담배 연기를 예쁜 입술로 뱉었다.

 죽음은 한 번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만취한 다음 날 위액을 토하는 일, 충혈된 눈을 거울을 통해 보는 일, 비 오는 날 새의 울부짖음을 듣는 일, 그리고 꽃을 보는 일. 그런 것들은 짤막하게나마 죽음을 보여주었다.

 곧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젊은 여류 시인은 죽음의 연기를 뱉으며 혼잣말을 했다.     

 “엄마, 죽음의 적정 기간이 정말로 있긴 있는 건가?”     

 뱉어낸 연기는 대답이 없었다. 뱉은 것이 예쁘지 않아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늙은 시인은 떠났고, 남은 여류 시인은 자신의 집에 남아 음악을 틀었다.

 살랑살랑 춤을 췄다.

 죽음의 무대를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서.

 뻣뻣한 몸은 우스꽝스럽게 삐걱댔다. 여의치 않았다. 이내 그녀는 텅 빈 집에서, 콘서트의 여가수처럼 홀로 말했다.     

 “안녕, 여러분. 나는 오늘 마지막 무대를 가져요. 어머, 기지배들. 너네도 왔구나. 아빠, 몇 년 만이지. 잘 살아요. 스쳐지나간 연인들도 안녕. 내심 너희가 와주길 바랐는데, 와줘서 고마워.”     

 춤 실력이 뻣뻣해서일까, 그녀의 상상에서 몇몇의 관객은 박수대신 눈물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는 끝이 나고, 그녀는 커튼이 내려오는 선을 향해 천천히 걸을 것이다.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곳엔 선생님과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스치는 서글픔은 미련일 것이다. 객석의 누구라도 무대에 난입해 줘, 머리카락이든, 팔이든, 나를 잡아 당겨 줘.     

 아직은 제법 길쭉한 담배를 짓눌러 껐다. 예쁜 입술에선 연기 대신 까슬까슬한 목소리가 나왔다.     

 “담배도 줄여야 하는데.”     

 천장에 맴도는 담배의 잔연(殘煙)이, 동그란 전등을 에워쌌다.

 입술이 예쁘다고 칭찬해 주던 어머니의 웃는 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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