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골목 저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자주 보던 것이었지만 오늘은 익숙지 않았다.
요 며칠은 시간개념이 불분명해, 누나가 목을 매달아 죽은 지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다만 집 너머의 버닝가트(Burning Ghat, 화장터)에서 올라오는 회색 연기는 누나의 몸이 타며 내는 것이 확실했다.
“니틴, 와서 아침 먹거라, 학교에 가야할 시간이잖니.”
어머니는 더 이상 울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밥맛이 없어요, 엄마, 엄마는 이제 울지 않으세요?”
어머니는 손으로 얼마간 밥알을 굴리다가, 잠시 그것을 멈추셨다.
“니틴,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단다. 탄비 누나는 다음 생에 더 행복하기 위해 먼저 떠난 거야.”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 다만 눈을 두어 번 끔뻑였다. 긴 속눈썹이 한 가닥 빠졌는지 오른쪽 눈이 따가웠다.
나는 손으로 밥을 몇 번 뒤적여 집어먹고는 곧바로 학교로 향했다.
바룬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나와 몇 초간 눈을 맞추셨다. 평소엔 좀처럼 나를 특별히 대하지 않으셨는데 말이다. 동정 비슷한 걸까, 나는 그것이 의아해서 조금은 괴상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그는 내게서 눈을 거두고는 곧바로 책을 펼쳤다. 지리 교과서.
“중학생 정도면 알겠지만, 갠지스 강의 하류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지? 맞아, 프라틱. 잘 대답했다. 순다르반스 말이다. 그곳에는 맹그로브(Mangrove)라는 특이한 나무가 있다. 식물 중에선 유일하게 새끼를 낳는 나무지. 새끼는 어미 나무의 가지 속에서 얼마간 자란 후, 떨어져 바닷물을 떠다닌단다. 그리곤 적당한 곳에 어미처럼 뿌리를 내리지.”
따분한 수업 내용이 오늘따라 더욱 짜증났다.
세상은 어이없도록 평화롭다. 40도를 웃도는 날씨가 짜증에 한 몫을 더했다.
70만 루피. 아미트 형의 부모가 요구한 금액이었다.
아미트 형은 우리 누나의 생전 연인으로, 그 집의 부모는 그 둘의 혼인 지참금으로 우리 가족에게 70만 루피(한화 약 1200만원)을 요구했다. 그 무렵부터였나, 어머니는 자주 울음을 터트리셨고, 아버지의 출근시간은 수상할 정도로 앞당겨졌다.
누구도 누나가 자살한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누나가 자살한 이유가 그것 때문일 것이라 확신했다.
‘다우리’ 제도.
신부 측이 신랑 측의 가족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혼인 지참금 말이다. 내게 그렇게도 친절하던 아미트 형은 어제 나를 보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남이 되어버린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 중에 깜빡 졸은 걸까, 방금 전까지의 교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큰일이다. 바룬 선생님은 조는 아이들을 마구 때리기로 유명한데.
눈앞의 공기가 매캐하다. 미간을 구겨 앞을 보려고 애를 쓰니, 저 멀리 죽은 탄비 누나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장터의 인부 하나가 누나의 두개골을 깨부쉈다. 옆에 서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니틴, 니틴! 저기를 봐, 누나의 영혼이 날아가고 있단다. 오, 탄비야. 다음 생에는 부디 풍족한 집에 태어나렴.”
꿈의 1막이 끝난 걸까. 매캐한 화장터의 광경은 온데간데없이, 나는 이제 크림색의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천천히 움직였고, 나는 얼마 후에야 나의 몸이 갠지스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흘러 흘러 도착한 강의 하류에는 채 타지 못한 사람들의 시체가 둥둥 떠다닌다. 누나, 누나는 어디에 있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다만 맹그로브 나무의 사각거리는 소리뿐이다.
맹그로브의 새끼 나무가 물 위를 떠돈다. 나는 저것이 누나의 환생이라고 확신한다.
“누나, 엄마는 누나가 부잣집 딸로 태어나길 바라셨는데.”
조그만 맹그로브가 사각거렸다. 괜찮아, 누나는 이제 스스로 죽을 필요가 없단다.
누나가 뿌리를 뻗어 헤엄을 멈춘다. 벵갈 호랑이와 멧돼지는 누나의 가지를 물어뜯지 않고 지나간다.
니틴...니틴...
“니틴!”
눈이 번쩍 뜨인다. 바룬 선생님의 밥솥만한 손바닥이 나의 얼굴을 쳐올렸다. 땀 때문에 찰싹 소리는 더 크게 울려 퍼졌다.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아니냐, 거지새끼 주제에.”
바룬 선생님의 얼굴 위로 아미트 형의 얼굴이, 아미트 댁 어른들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간다.
눈물이 콧속 깊은 곳으로부터 차올랐지만 나는 기어코 그것을 참았다. 나는 나의 힘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죽음의 과정 없이도. 그렇게 다짐한다.
순다르반스의 어딘가에서 불어온 것만 같은, 누나의 호흡을 닮은 바람이 나의 눈물을 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