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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Mar 25. 2016

소설.




 너는 내 표정에서 가끔 정체모를 슬픈 것이 부유물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고 말했지,

 그럴 때마다 너는 툴툴댔다.

 대체 그 슬픈 것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말야. 혹시 자기 때문이냐고.

 그렇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비밀을 간직할 거다.

 이 슬픔이 왜인지를 당신이 알게 되면 당신 역시 전염병처럼 슬픈 눈을 갖게 될 게 뻔하거든.     

 간절히 바라건대, 그대는 언제까지고 슬픔 없는 눈으로 날 바라봐 줘.     

 아! 당신이 처음 이쪽을 보고 웃던 날이 다시 생각나 버렸어.     

 콘크리트랄지 시멘트 같이 딱딱하고 밋밋한 것을 스스로의 미덕으로 삼던 나의 옆에, 너는 보라색 벌건색 꽃들과 퍼런색 풀들 속에서 튀어나와 나란히 서준 거야. 나는 그게 너무 좋았어.

 봄의 식물들로부터 비롯된, 조금은 현기증이 나기도 했던 너의 활짝 웃는 장면은,

지극히 낭만 없던 내게 지퍼처럼 맞아드는 기분이었거든.     

 먼 옛날의 지구, 판게아라는 이름의 큰 땅덩어리가 흩어져 지금의 대륙들이 되었듯,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먼 옛날엔, 우리가 하나의 살덩어리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     

 지금 이렇게 손과 어깨를 맞잡고, 탱고인지 왈츠인지 모를 춤을 추는 와중에도 넌 입을 비죽거리네, 오늘도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거냐고 말이야.

 삐진 표정을 짓는 와중에도 움직이는 발자국들이 어쩔 수 없이 귀여워. 미안해.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알려줄게. 내가 이런 만성적인 우울을 갖게 된 이유 말야,     

 우리가 언제까지고 함께일 수 있을까.

 아마, 어쩌면 확실히 우리는 이별해.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우리만의 춤을 출 때마다, 내가 오른 발을 내딛으면 당신은 왼쪽 발을 뒤로 물렀고,

당신이 먼저 그럴 때면 다음은 내가 역시 그랬지.

작용과 반작용처럼.     

 이렇게 당신의 집 앞 가로등에서, 이어폰 하나를 나눠 들으며 정체모를 춤을 출 때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붙들고만 싶어, 우리가 영영 튕겨져 나갈까 봐서.

 우리 중 하나라도 헤어짐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 갈까봐서.     

 아, 그렇지만, 당신을 아무리 붙들어도, 우리의 맞잡은 손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퍼런 슬픔이 보여. 저 녀석은 손을 아무리 꽉 잡아도 새어나온다.

 네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멈춤 없이 우리 손가락 마디마디에 세월의 흠집을 내고 있잖아, 마치 작은 손톱깎이 같은 것으로 쪼글쪼글하게.     

 다 늙어버린 당신이, 혹은 내가, 생의 현장에서 먼저 떠나고 나면, 우리 서로는 아득한 이별의 우주 속에서 무중력을 떠돌지도 몰라.

 그게 내가 널 만나고 슬픈 기색을 보이는 유일한 이유일 거야.

 그렇지만 애인아, 내가 조금 슬퍼 보인다고 지금의 춤을 멈추진 말아줘, 형편없고 근본 없는 막춤이라도 계속 함께 춰줘.     

 너같이 화사하고 벌겋고 알록달록한 존재가 나처럼 밋밋한 사람에게 와버린 것은,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이었어.  너는 그렇게 처음 만남부터 내게 불가사의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멈춤 없는 시간 따위라던가, 슬픔과 같은 호르몬 작용 따위로부터 나를 붙잡아 지켜 줘.

 춤추는 동안에도 불가사의한 너의 다리로 나를 더 꽉 휘감아줘.     

 알 수 없는 사람, 우리 다음엔 어떤 춤을 출까.

 시간이 많이많이 흐르면, 당신이 처음에 있었던 신선한 풀숲으로 함께 들어갈까.

그리곤 거기서 영영 춤출까.


<춤>, 오휘명 단편선 <레토르트 노벨 레스토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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