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니 문득 고마운 사람들에 대하여.
이미 멀어졌거나, 소식이 끊겼거나, 때때로 인터넷을 통해 간간이 소식을 접하지만 별도의 안부 인사를 전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린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꽃과 바람과 낙엽과 햇빛에는 그다지도 고마운데 사람들한테는 크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 내게 베풀면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언젠가 꼭 갚아야 할 빚처럼 느껴진다.
갚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걸 바라고 베푼 것도 아닌데 그냥 내 마음은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종의 빚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건 아마도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친밀하게 말을 걸어오거나 친밀한 사이가 되려고 다가오는 이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지만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거의 없다. 나의 어떤 면을 보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참 고맙네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에게 실망한 이들을 마주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는 것이 참으로 신비로웠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옷깃이 스쳐 아는 사이가 되고,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지인이 되었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어 관계가 소원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종국에 멀어진다 해도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만큼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와 안 맞는 부분이 있거나 실망한 부분이 있어 친밀하게 지내던 이와 멀어지고 나면 그게 뜨거워서 오랫동안 열병처럼 앓아야만 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 같았고, 내가 조금 더 잘해주면 관계를 잃지 않고 더 오래 이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을 답 없는 고민 속에 갇혀 자책했다.
시간이 지난 뒤, 지금의 나는 이성적으로 문제를 보는 눈이 생겼고,
그때의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틀렸다.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해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맞춰줄 순 없었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좋은 사람' 축에도 끼지 않는 '적당히' 혹은 '약간'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 있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왔다 쉽게 떠나갔다.
그건 시간이 흐르면 초록색 나뭇잎이 물기가 바싹 말라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땐 그걸 알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서 떠나가는 사람들이 아프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다가왔다가 또 쉽게 떠나간다 해도 그러려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편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열병처럼 앓는 것보다 나았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도톰한 벽을 쌓았더니 나이를 먹을수록 상처받는 일은 줄어들었고, 인간관계는 어려워져 가뜩이나 많지 않았던 인간관계가 더 한정적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우물 속 개구리가 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마음 맞는 소수의 인원들과 놀기에도 삶은 언제나 바빴으니까. 회사도 나가야 했고, 운동도 해야 했고, 글도 써야 했고, 책도 만들어야 했으니까. 외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없이 살기에도 내 삶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바빴으니까.
하지만 외로움과 친구가 된 나라도 가끔 인간관계에서 오는 공허함이 견딜 수 없게 크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건 주로 생일이나 연말, 연시, 명절 같은 좋은 날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명절이라고, 새해라고, 연말이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나누고 좋은 얼굴로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았는데 나는 명절이나 새해라고 해도 연락을 나눌 사람이 없을 때 주로 그랬다.
그저 평상시와 다름없이 내 곁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시간을 가졌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게 맞는 걸까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친밀했던,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지금은 모종의 이유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지만 내게 여전히 고마운 사람인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몇 안 되는 작고 소중한, 깊고 긍정적인 인연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내게 좋은 사람이었고, 어느 정도 멀어진 지금도 좋은 사람에 속했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어 길게 인연을 가지 못하는 내게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인연이다.
삐딱하게 앉아 온갖 세상의 우울함을 안고 살아가던 중학생 나에게 꾸준한 관심을 가져주어 좋은 어른이란 이런 것임을 깨닫게 해준 담임 선생님이 그랬고, 사회 초년생이라 아무것도 몰라 매번 서툴고 거친 알바생인 나에게 어른이 베푸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준 가게 매니저님이 그랬다.
그분들과 자주 연락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이나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분들이 내게 베풀어준 애정과 호의였기 때문이라는 걸 한참이 지난 지금도 곱씹고 있다.
딱 그분들만큼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아도 베풀 수 있는 마음과 서툴고 거친 상처받은 아랫사람에게 아량으로 품어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한참동안 연락하지 않아 소식이 끊겨도 누군가의 마음에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