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주는 힘,
구차해지는 일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당장 다음 달부터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by 이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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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을 먹다가 아무렇지 않게 신라면 블랙을 먹는 일
- 그건 정해진 일자에 정해진 월급이 들어오는 일


신라면 블랙을 먹다가 앞으로는 자주 못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안에 아쉬움이 고이는 일
- 그건 매달 같은 날 들어오던 고정 수입이 없어지는 일


식당을 가려다가 결국 편의점에 가서 한참을 고민하다 몇 백 원 차이로 육개장을 고르는 일
- 그건 일을 그만두고 나서 불확실함 앞에 내가 구차해지는 일





늘 가난한 상태로 살았던 나는 꾸준히 월급을 받았을 때도 언제 다시 불안해질지 몰라 일정 금액 이상을 저금하고 적금했다. 친구들은 흐름에 따라 재테크도 하고 투자도 하고 몇 백만 원이라는 명품 가방도 한두 개씩은 구매하고 젊었을 때가 아니라면 가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머나먼 타지 땅을 밟고 돌아오는데,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꾸준한 월급에 감사하며 살아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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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비웃을지 모르지만 내가 해본 사치라고는 그런 것들이 전부다.


맛이 없을지도 모르는 신상 컵라면을 아무렇지 않게 골라보는 것, 비가 많이 와서 버스 대신 택시를 타는 것,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버스를 타는 것. 적으면 몇 백 원, 많아봤자 몇만 원에 달하는 아주 소박한 사치들.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처럼 사치를 부릴 수 있어도 그러지 않았던 건, 언젠가 내가 이런 선택을 하리란 걸 스스로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일을 그만두고 단 몇 개월이라도 내 꿈을 위해 사는 것, 후회 없이 글에만 매달려보는 것, 잘 안 될지도 모르는 공모전에 내기 위해 몇 날 며칠씩 글을 쓰고 또 쓰는 것. 나는 이 순간에 쓸 돈을 위해 그렇게 지지리궁상맞게도 살아왔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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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짠순이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당장 1년 쉬어도 쓸 돈이 있다. 1년 동안 일하지 않고 글만 써도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그러지 못하리란 걸 안다. 나는 1년이나 불확실한 미래를 견딜 수 없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 앞에 멍하니 주저앉아 꿈이랍시고 글만 써재끼는 일따위, 상상도 할 수 없다. 내가 정한 시간은 딱 3개월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내내 알바를 해왔고, 20살부터 혼자 살면서 호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매일을 산 나는 내 꿈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내 곳간을 미래 없이 파먹는 일따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건, 내 스스로가 구차해지는 일일 것이다.

맛없을지도 모르는 신상 컵라면보다는 오랫동안 먹어와서 어떤 맛인지 잘 아는 안전한 컵라면을 선택할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시키던 배달 음식보다는 간장계란밥이랑 친해질 것이고, 4캔에 만 원이 넘는 맥주보다는 단 몇 백원이라도 저렴한 발포주에 친해지는 일. 꿈을 위해 현실 앞에서 구차해지는 일.


구차해진 나를 보면서 때로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뒀던 걸 잘한 것일까?


사람들과 친해지고 업무에 익숙했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티면 지나갈 시간이었던 거 아닐까?
그저 내가 너무 나약해서 못 버틴 거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버티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버티지 못했다는 사실에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책망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시키던 배달 음식을 마음대로 시키지 못하는 날에,
네 캔에 만 원 하는 맥주를 고민하다 발포주를 사는 어떤 날에,
아무리 비가 와도 택시 대신 버스를 꿋꿋이 기다리는 어떤 날에

나는 아마도 내가 오랫동안 꿔온 작가라는 꿈에 회의적인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가서
꿈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해도
오랜 꿈을 위해 도전을
결정한 일은
잘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4년을 버티고 그만뒀던 건, 버틸 만큼 버텼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고
3개월 동안 후회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3개월 뒤에 새로운 일자리를 못 구할 수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자.
조금 더 쉬라는 신의 계시라고 생각하자.

모든 건 내 인생이고, 내 인생을 마주하는 내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지금 내가 이렇게 자기 최면적인 글을 쓰는 건, 언젠가 구차해진 내가 너무 슬프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조금 구차해져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헤맨 만큼 나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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