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다 써먹을진 몰라도 - 해인사 청년객실 편(2)

1. 모든 게 다 신의 뜻이라 (찾아가는 길부터 첫째날까지)

by 이양고
"어디다 써먹을진 몰라도" 시리즈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계획했던 여행, 우연히 떠난 여행
템플스테이부터 백패킹까지
때로는 실패담, 때로는 소소한 발견들
집 밖에서 마주한 일상의 조각들

특별할 것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를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간입니다.





1.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는 길


제가 있는 곳에서 해인사로 이동하려면 우선 '대구'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터미널 -> 대구 서부 정류장 -> 해인사 행 버스


대구에서 해인사로 가는 버스는 생각보다 많은 거 같아 보이지만

한 번 놓치면 입소 시간인 '15시'를 놓칠 수도 있어서

저는 아침 8시에 터미널로 향했고, 총 세 시간? 정도 소요되어 도착했습니다.

대구와 해인사 버스 시간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더니 출출해서 서부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관문시장" 구경도 하고 김밥도 사먹었습니다


다들 절에 들어가기 직전에 속세의 맛을 충전하기 위해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다던데,

김밥 러버인 저로서는 행복한 만찬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해인사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대구 서부까지 가는 버스는 예약이 가능했는데,

서대구에서 해인사로 들어가는 버스는 예약 할 수 없고, 현장 발권만 가능했어요.

심지어 좌석을 지정할 수도 없어서 먼저 타는 사람이 임자였습니다.



아침에는 비가 안 왔는데 관문시장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가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회색빛 건물이 아닌 푸른 들판이 펼쳐지는

촌으로 들어섰습니다.


촌에 태어나 회색빛 보다 초록이 익숙한 저는

논과 밭과 산과 물이 반가웠습니다.


그저 절로 향하고 있을 뿐인데

이미 절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버스에 내릴 때쯤 되자 배가 너무 아파서 급하게 화장실을 찾다가 들어가게 된 '해인향기' 라는 카페.


다짜고짜 화장실이 어디냐고 여쭤보고 화장실부터 급하게 쓰고 나왔는데,

버스 종점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는데 못 보셨냐며,

그 가까운 곳을 못 보고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가 인연인 거라며 웃으며 말씀해주셨습니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도 너무 예쁘고,

화장실부터 급하게 썼는데 인연이라고 말씀해주신 사장님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해인사 근처를 가게 되신다면 방문해보는 거 추천!



사실 해인사행 버스에 올랐다면 '성보 박물관' 앞에 내리는 게 좋아요

그쪽으로 쭉 올라가야 해인사가 나오거든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저는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가느라

시간을 좀 더 잡아먹었지만,

좋은 인연도 만나고,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서두르지 말고 돌아보며 가라는

신의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해인사까지 올라가는 길은 꽤 멀었어요.

(비도 오고 가방도 무거워서 한 30분은 걸린 거 같아요)


참고로, 해인사 코앞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어요.


대중교통을 통해 해인사까지 찾아가는 분이라면

성보 터미널에 내려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차량으로 방문할 예정이라면 '카페 수다라'까지 올라 가서 차를 세우는 것을 추천드려요!



비가 오고 짐이 무거워서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만큼

흠뻑 젖은 뒤에야 도착한 해인사


비가 와서 그런지 운무가 아주 멋있더라고요.

도착해서는 '원주실'로 찾아가 스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4년 일한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인데,

예전에 템플스테이 했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좀 더 오래 묵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스님은 여기 있는 동안에 좀비처럼 지내다 가지 말고

본인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 취지로 방문했던 것도 맞아서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열심히 경청했습니다.



조끼와 바지로 이루어진 절복을 주시며

생활 하는 동안에는 그 옷을 입으라고 말씀해주셨고,

그 옷을 받아 가지고 와 '청년객실'로 이동하였습니다.




2. 청년객실 입소



청년객실 대방부터 청년객실 1호, 청년객실 2호, 청년객실 3호

이렇게 총 4개의 방이 있는 것 같았어요.


방과 방 사이 벽은 아주 얇아서 이야기 하는 소리나 알람 소리가 무척 선명하게 들립니다

방을 이용하실 땐 소음에 주의하세요 (방구 뀌는 것도 들릴 거 같아요)





방은 이렇게 생겼어요.

그냥 사각형으로 생겼고, 처음에는 이불도 없었어요.

나중에 행자?님께서 이불을 주셔서 그 이불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앞에는 출입문, 뒤에는 창문이 있는데

절답게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휴식 시간마다 힐링할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봉사활동을 염두에 두고 간 것이었지만

시간만 된다면 방에 고요하게 앉아 자연의 소리에 귀만 기울이고 싶을 정도로.



옷을 갈아입고 3시 30분까지 모이라고 해서 첫 업무를 수행하러 갔어요




3. 본격적으로 자원봉사 시작!


쌀 창고에 가서 쌀을 옮기고

법당에 가서 과일과 큰상?을 옮기는 작업도 하고 나서야



공양간 도착!


생각보다 공양간이 엄청 넓어요.

예전에 '성주사'에서 템플 스테이 했을 땐 규모가 작은 편이었는데

해인사는 확실히 절도 그렇고 공양간도 그렇고 규모가 다 큼직큼직하더라구요.


(생각보다 일 하는데 힘이 든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절 근처에는 편의점이 없습니다.

편의점에 가려면 정류장 종점까지 가야해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간식거리를 많이 챙겨주셨거든요.


아이스크림도 먹었고,

새빨갛게 잘 익은 자주도 먹었고,

달달한 옥수수도 먹었습니다


첫날에는 살 찌겠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노동의 강도가 약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는 살이 빠졌습니다

(럭키..비키..자냐...)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이 적힌 시간표가 있어서

해당 시간표대로 일정을 소화해내면 돼요.

처음엔 헷갈려서 자꾸 읽었는데, 마지막날쯤엔 시간이 외워지더라고요.


설거지를 하고 나면 설거지를 담당하시는 보살님께서 (때론 처사님)

씻은 그릇을 큰 테이블에 올려주시는데, 자원봉사자들은 마른 행주로 해당 그릇과 수저를 닦는 작업을 담당합니다.


뜨거운 김이 계속 올라와서 일하는 내내 땀이 났어요

(살이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열심히 노동을 하고 난 뒤에야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자원봉사자들은 처음 밥을 퍼놓고, 일이 다 끝난 뒤에 먹을 수 있어서 밥이나 반찬, 국이 다 식어있어요


다 식은 밥이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 그릇 뚝딱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 노동을 하고 나왔는데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지 조금씩 어두워졌으나 아직도 밝네요


이럴 때 여름이 좋아요

저녁 시간을 오래 즐길 수 있으니까요

운무가 짙게 낀 해인사와 산을 보고 있자니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




이건 '청년객실 대방'에 붙어있던 시간표.


대방에는 청소기도 있고, 책도 있고, 커피포트도 있고

생활에 쓰일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아요.


청소하고 싶으실 땐 대방에서 청소기를 빌리는 걸 추천드려요!


(2일차는 2편에서 세밀하게 풀어보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