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렇게 평온한 하루라니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낯선 곳에서 못자는 편이었지만,
룸메들의 배려 덕분에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도
치앙마이보다 훨씬 더
좋은 질의 수면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제 먹은 막걸리의 효과였을까?)
조식은 정갈했다.
'순천 한달살기 in 장천'을 찾아보며
특히 기대가 됐던 건
숙소 스테이두루의 잘 차려진
정갈한 조식이었는데,
생각만큼이나 정갈하고 깔끔한, 완벽한 아침이었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이런 밥상이 아닌 뷔페식으로,
자율배식을 통해 원하는 만큼 퍼먹으면 된다고 한다.
이런 정갈한 아침상을 받고 싶다면,
다음엔 여행자로 스테이두루에 방문해야겠지.
9시 30분까지 내려와서 식사를 하라고 하셔서,
나는 겨우 8시에 일어나 씻고 내려왔는데
다른 방 메이트들은
일찍 일어나 러닝을 하고 왔다고 한다.
가을이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뛰어보고 싶은데
아직은 아침에도 매우 덥다.
괜히 안 하던 행동을 했다가
아프게 될까봐 아침 운동은 참기로 했다.
한달 동안 타지에서 지낼 예정인데
최대한 안 아픈 게 좋을테니까.
(tmi. 순천 오기 며칠 전 장염으로 크게 고생해서
하루만에 2키로가 빠졌더랬다.)
스테이 두루는 장점이 참 많다.
1층에 얼마든지 빌려 볼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과,
조식이 정갈하고 맛있다는 것과,
숙소가 아기자기 하게 이쁘다는 것과,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이 있는데 (물론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또 하나의 장점은 1층에 식물이 많아
눈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조식을 먹고도 잠이 깨지 않아
주변에 있는 카페에 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왔다.
평일에 쉰다는 건 좋다.
어딜 가든 사람이 많지 않아
고요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웬만한 곳에는 웨이팅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폭염대응 생수 무료 공급' 같은 시스템이 없는데,
순천에는 생수를 무료로 주나보다.
심지어 꽝꽝 언 얼음물이었다.
(하지만 인기가 많은 모양인지
오후에는 텅텅 비어있었다.
폭염대응 생수를 먹고 싶다면 오전에 먹을 것.)
오늘의 첫 일정은 다 같이 모여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정갈한 순천식 백반이 오늘의 메뉴였다.
반찬은 건강하고 삼삼해서,
밥이 비워지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빠르게 해치웠다.
배불리 먹은 아침이 아직
위에 남아있는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다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은 식당도,
다음 일정인 '온장고'도
숙소에서 거리가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15분 이상 걸으면
땀이 주룩주룩 나는 더위였기 때문에.
이런 더위에 장점은 뭐다?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
잠깐 걸어가는 중에도 폭발하는 구름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걸었지만,
문득 이런 날씨에 더운 곳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몹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지나가다가 본 '폭염 대응 생수 무료공급'이
주민들을 생각한 복지라는 것도, 잘 느껴졌다.
이런 더위에
물 하나 사 먹기 어려운 노인분들이라면
필시 반가운 선물이 될테니.
그 다음 일정은 '티 클래스 & 족욕'이었다.
지어진지 얼마 안 되었다는 '온장고'는
우리가 첫 개시였다.
이렇게 깔끔한 인테리어라니.
아주 작은 디테일에도 신경을 쓴 듯한
소품들에 감동했다.
수건과 모래시계, 히말라야 솔트, 아로마오일까지.
우리는 프로그램 일정에 포함되어 있어
따로 비용이 들지 않았지만
관심이 있는 분은 유료로 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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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먹고 따뜻한 티를 마시며
따뜻한 물로 즐기는 족욕이라니.
도시에서의 바쁜 생활이
고되고 지칠 때 한번쯤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로마 오일은 '사이프레스, 페퍼민트, 라벤더' 세 가지가 있었는데,
나는 '페퍼민트'를, 룸메이트는 '라벤더'를 골랐다.
접시와 컵은 묵직하고 거친 표면이 매력적이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매처를 물어볼 뻔 했다.
친구가 아무리 맛있는 음료라도
그 음료를 담는 컵이나 병이 중요하단 말을 했는데,
요즘들어 그 말이 여실히 느껴진다.
묵직한 컵에 마시니
흔한 페퍼민트 차도 더 맛있게 느껴지는 기분.
아로마오일을 떨어뜨리고 히말라야 소금을 넣은 따뜻한 물에
30분 동안 발을 담근 뒤 로션까지 챙겨바르자
발이 몰랑몰랑 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라면 숙소로 돌아가
못 이기는 척,
다른 모든 것들은 모르는 척
낮잠을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피어올랐지만
그냥 잠들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룸메들과 함께
눈 여겨 보았던 카페로 가는 길.
아직 한낮이라 걷기엔 더웠지만
순천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씩씩한 걸음을 내딛었다.
입추가 지난 시점이지만
낮엔 아직도 몹시 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늘로 다니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사각형 벽에 둘러싸인 건물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자연바람의 살랑거림.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풀과
주말에만 여는 책방도 눈도장으로 찍어두었다.
주말에 동생이 오면 가야할 곳이
이렇게 조금씩 늘고 있다.
그건 곧, 발도장이 찍힐 공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온 곳은 카페 '브루웍스'
로스터리 카페이고, 양조장을 개조한 독특한 공간이었다.
혼자 글쓰러 오기엔
조명도 어둡고, 음료도 비싼 편이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특이한 음료를 맛보기엔 좋은 곳.
커피를 못 마시는 룸메는 브루웍스에서 파는
'사이다'가 맛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파는 '순천 사이다'가 매실 맛이 나는 사이다라고 한다.
'순천 사이다'라길래 뭐가 다른가 했더니
매실 맛이 나는 사이다라니.
오늘은 마셔보지 못했지만
순천 한달살기를 하는 동안에
무조건 한 번은 꼭 마셔보리라 생각했다.
카페는 양조장을 개조해서 만든 것답게
천장이 무척 높았다.
두 대의 올드카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묘하게 양조장 컨셉의 카페와 잘 어울렸다.
각양각색의 음료취향.
나는 카카오라떼를,
룸메들은 오렌지 에이드와 뱅쇼에이드, 바닐라 라떼를 시켰다.
카카오라떼가 브루웍스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하는데,
카카오 가루가 아닌 꾸덕한 카카오를 넣어 만든 라떼는 진하고 맛있었지만
내 입에는 약간 쓰고 떫은 맛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카카오의 풍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사먹을만하다.
살아온 이야기와
취향 이야기 등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우린
조금 더 가까워짐을 느꼈다.
순천에 와
당신들을 만날 수 있어
너무 다행이야.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청춘창고'
먹을 거리도 있고 즐길 거리도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80년 동안 정부의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청춘들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평일이라 조용해서 더 좋았다.
그릭요거트, 파스타 등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소품샵이나 공방도 있어 한번쯤 들르기 좋다.
이곳은 처음 들어서자마자 내 시선을 끌었던
수제 양갱 전문점 '정원단밤'
사실 양갱을 좋아하지 않아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정갈하게 놓인 시식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몇 개 집어먹고 나니
호감이 급상승했다.
양갱이라고 하면
달기만 하고 팥맛만 진하게 날 것 같은데,
다양한 맛이라 선택지가 폭넓어 좋았고,
무엇보다 많이 달지 않아 좋았다.
만약 순천을 오게 된다면... 수제양갱전문점 '정원단밤'에 가보세요. 두번 가보세요.
양갱 시식도 하고,
억울하게 생긴 인형도 구경하고.
예쁜 앞치마를 한 인형도 구경하고.
거울 앞에서 사진도 열심히 찍어보았다.
남이 찍어주는 사진 앞에서
몹시 어색해 하는 나는,
거울 앞에서 찍는 사진을 그나마 마음 편하게 생각한다.
(치앙마이에서는 혼자라서 거울 앞에서 찍었다고 말했지만, 돌이켜보니 거울샷이 제일 마음 편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강에 비친 윤슬이 예뻐서 잠깐 멈춰서 사진도 찍고
인조잔디가 아닌 '진짜' 잔디가 깔린 산책길도 사진 찍어보았다.
이번 순천 한달살기가 좋은 건,
자유시간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
산책도 마음껏,
글도 양껏,
사색도 힘껏- 할 수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자유시간이 많아 버려지는 시간이 많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니
조금 더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계획해봐야겠다.
다음 일정은 '순천시 영상 미디어센터 두드림'에서 볼 수 있는 무료영화 관람.
숙소에서 도보로 약 20분 정도 소요되는데,
인솔자 중 한 분이 태워주신다고 하셔서 1층에 모였다.
이 친구는 1편에서도 사진을 찍었던 친구인데,
숙소 근처 미용실에 사는 댕댕이 '몽이'이다.
주인바라기로,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한테는
맹렬하게 짖지만 아주 작고 소중해서 귀엽기만 하다.
달랑 들면 짖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 것 같은 비쥬얼로
맹렬하게 짖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나물이가 보고 싶었다)
무료 영화 관람이라서 작은 사무실 같은 분위기려나? 생각했는데
그냥 영화관 같은 분위기였다.
소리도, 화면도 영화관 퀄리티라 좋았다.
상영시간도 19시부터이니 직장인도 퇴근하고 보기 좋은 시간대.
다들 적극적으로 '두드림'을 활용하세요.
오늘 뭔가 많이 먹었다고 생각해서
저녁을 패스할까.. 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니 출출해져서
다 같이 들른 '맘스터치'
제일 작은 햄버거를 골라 먹고 산책 겸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 필사하고
2일차 밤도 이렇게 깊어지고 있다.
내일은 금요일.
오후에 선셋 요가 일정이 있기 때문에
조식을 먹고 일찌감치 카페에 가 글을 써볼까 한다.
올해가 가기 전 중장편 소설을 마무리 하는 것을 목표로.
내가 지내던 곳에서 떠나와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은 내게 어떤 영향을 주고,
이 영향은 어디로 나를 끌고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