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한달살기 in 장천 (3)

3.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한다는 강박 가지지 않기

by 이양고



1. 뭐가 맞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할 것



오늘도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숙박객들의 조식과는 다르게

오늘은 조촐한 반찬으로 꾸려졌다.


상주캠프, 해인사 자원봉사를 다니며 느낀 건

어떤 밥상이라도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

노동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


오늘도 누군가는 부지런히 일어나

러닝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체력을 기를 겸 운동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러닝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가

무섭게 생리가 시작됐다.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프고

자는 동안 무릎을 포함한 관절이 아프다 했더니

예정일보다 2일이나 빨리 시작된 것이었다.



조식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16시에 시작하는 프로그램 일정 전

글을 쓰러 카페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가 까무룩 잠에 들었다.


무리해서 러닝을 나갔다 왔더라면

오후 일정을 소화 못하고 내내 누워있을지도 모르는

무거운 몸상태였다.



나가야 하는데.. 생각하며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스테이두루 1층에서 집어 든 책을 읽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가를 반복하며

시간이 야속하게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생리통이 있어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정한 룸메가 진통제와 어제 사온 양갱을 선물로 주었다.

빈속에 먹으면 속이 쓰릴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타지에서 아프면 챙김을 받을 수 없어 서러운데,

다정하고 친절한 룸메가 곁에 있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당신이 내 룸메라서 너무도 다행이야.



룸메의 마음이 담긴 약과 양갱을 챙겨먹으니

밖으로 나갈 힘이 좀 생겼다.


어쩌면이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기 아깝다는

생각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한달살기에서의 목표는 두 가지였기 때문에.


중장편 소설 한 편 완성하기,
브런치에 매일 글쓰기.



뭐라도 쓰려면,

다양한 걸 보고 느끼는 게 필요했고,

그러려면 밖으로 나가 뭐라도 해야만 했다.


나가자.

누워있기엔 시간이,

날씨가, 너무 아깝잖아.



축축 쳐지는 몸으로 나가는 게 맞을까?

출입문 앞에 서서 짧은 고민을 했다.

이런 컨디션으로는 나가더라도 양질의 글을 못 쓸 게 분명했다.

무기력하고 부정적이 생각이 가득 도는 상태.


하지만 이윽고 초록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자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힘을 내 바깥으로 나왔다.



어제는 먹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는데

오늘은 흰구름과 먹구름이 뒤엉켜있었다.


흰구름 밑은 화창하기만 한데,

먹구름은 이쑤시개 하나만 찔러넣어도 비를 잔뜩 쏟아낼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설마, 비는 안 오겠지?

생각하며 오늘의 목적지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숙소에서 나온지 5분 정도 흘렀을 때,

꽤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건 다 젖어도 되는데,

파우치 없이 달랑 들고온 맥북이 신경쓰였다.


내가 글을 쓰려면 꼭 필요한 도구인데.

고장나면 안되는데.

역시, 괜히 나왔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낭패감으로 가득차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소나기가 확실하다는 점.

이대로 숙소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뛰다시피 걸어 목적지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노플라스틱 카페'



노플라스틱카페는, 텀블러를 가져가면

커피를 할인 받을 수 있는 카페라

순천에 온 첫날 인솔자님께 추천을 받은 카페다.



텀블러를 세척할 수 있고,

공유텀블러를 빌려 테이크아웃잔을 대신할 수 있으며,



수세미나 빨대 등 친환경 제품과

소분해서 구매할 수 있는 세제도 팔고 있었다.


또, 자원모아 챌린지를 통해

종이팩, 페트병, 양파망 등을 제출하면

종량제 봉투나 천연 수세미로 교환 받을 수 있는 챌린지도 하고 있었다.


자원을 생각하는 챌린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주 작은 힘이 모이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좋은 방향쪽으로 바꾸는 길일테니까



그리고 노플라스틱 카페에서 커피를 사면

스타벅스 텀블러를 1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었는데,

나는 워낙에 텀블러가 많아 구경만 하고 구매하지 않았다.


콜라보를 한 제품 같았는데,

정가가 3만원이 넘는 새 텀블러를 1만원에 구매할 수 있어서

많은 분들이 구매하는 듯 했다.



이제 오늘의 일정을 소화할 차례.

16시에 숙소 1층 로비에 모였다.

또 다른 누군가는 푹 쉬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고 왔다고 한다.



인솔자 님께서 추천해주신 카페 두 곳.

밀림 수퍼와 세이모 카페.


밀림 수퍼에는 밀크티가 맛있다고 하고,

세이모는 커피가 무척 맛있다고 하니 두 곳 다 꼭 가봐야겠다.



다 같이 방문한 곳은 어제도 왔던 브루웍스.


어제 오고 오늘 또 왔지만

브루웍스의 원두 냄새는 고소하다.


10명이 각양각색 메뉴를 골랐고,

나는 오전에 이미 커피를 마셔서

상하목장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카페에서는 앞으로 우리가 할 '아카이빙'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해주셨다.

아카이빙은 사진이나 영상, 글, 그림 등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재미있게 해보라고 하셨다.


아카이빙의 도구로 '글'을 일찌감치 정해왔던 나는

어떤 내용을 담을까, 고민하다가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인 '희주'님을 인터뷰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벌써 10년 째 순천이 좋아

순천에 살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희주님의 생각과 경험을 들어보고 글로써 풀어낸다면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


친하게 지내는 옆방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 생각을 전달했고,

그 친구 또한 재밌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거렸다.

본인은 도시 재생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본인이 사는 도시는 왜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궁금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여행처럼 느껴졌는데

어떤 주제로 아카이빙을 할지, 어떤 시선으로 순천을 바라보고,

어떤 기분으로 이 프로그램을 수행할지 고민하기 시작하자 더 흥미진진해졌다.




선셋요가를 하러 가는 길.

희주님께 미리 아카이빙 주제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이

인터뷰라는 말씀을 드리며 다음 주 중으로 질문을 리스트업해서 요청드리겠다고 하니

어쩌면 가장 쉬운 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며 크게 웃으셨다.


순천이 좋아 순천에 정착한 사람의 시선으로 순천을 바라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게 큰 인사이트가 될 것 같아 인터뷰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선셋 요가는 '순천의 정원 워케이션'에서 이뤄졌다.



새도 있고 꽃도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


여기에서 요가를 하게 된다고?

너무 허허벌판인데 덥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내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거대한 루피 엉덩이였다.


알고보니 순천은 8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한 달간 '정원으로 떠난 잔망루피의 여름휴가'를 테마로 한

'정원워케이션×잔망루피' 콜라보를 진행 중이었다.


유명한 캐릭터를 통해

순천을 다시 한 번 알릴 수 있는 게기가 될 테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루피 네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몰랐어,,,



정원 워케이션 건물 안에는 일하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고,

한쪽에 작게 루피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도 마련되어 있었다.


루피 스티커를 보며 하나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인솔자님께서 열이 식었으면 이제 나가자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 너무 시원한데 여기 있음 안 될까요. (진지)

묻고 싶었지만 여기에 온 이유를 망각하면 안 되지.


우리는 선셋요가를 하러 왔기 때문에 잠깐의 시원함을 뒤로 하고

건물 앞에 깔려 있는 요가 매트에 한 명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조 잔디가 아닌 진짜 잔디가 발에 닿자 부드러움이 느껴졌고,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였지만 생각보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동작 하나하나에 굳어 있던

근육이 풀리는 것이 느껴지는

야외 요가는 완벽하게 개운했다.



그러나 개운함을 느끼기 전 몇 분 동안은

루피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건물 앞에서

요가 동작을 하고 있는 우리를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것이

너무도 잘 느껴져서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시선에 위축되어 몸이 굳었는데,

강사님이 와서 위축된 몸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무릎을 부드럽게 눌러주셨다.


그 행위가 마치 다른 건 신경쓰지 말고

요가에만 집중하라는 무언의 진심 같이 느껴져서

동작 하나하나를 열심히 따라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내 몸이 부드럽게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놓치는 것이 많다.

이를 테면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에 매몰되어

내 눈 앞에 있는 중요한 시간을 날려버리는 것처럼.




요가를 끝내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요가를 무사히 잘 따라한 몸이 홀가분해졌고,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운 마음 또한 가벼워졌기에.



자연이 잘 어우러진 공간이라

다음에 글램핑을 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저녁은 '나눌터'



미리 육개장과 설렁탕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투표를 올려주셨는데,

나는 설렁탕보다 육개장 파라 육개장을 골랐다.

건더기는 실했고, 깍두기는 맛있었으며, 국물은 진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와도 좋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룸메들이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말에 약속이 있다며 떠나버렸다.


머쓱하고 쓸쓸해진 나는 침대에 홀로 누워있다가

집에 설치해둔 홈캠으로 동생을 불렀다.


동생은 내가 부른 이유를 잽싸게 알아차리고는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 나물이를 홈캠 앞에 보여주었다.


이번 주에는 동생이 순천에 놀러오기로 하여

순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만,

다음 주말엔 나물이를 보러 집에 다녀와야 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