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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D Jul 13. 2022

014. 같은 실수 반복자

핸들을 돌릴 때부터 느낌이 싸하더니

엑셀을 밟기 시작하면서 머리에선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했다.

하지만 밟고 돌아가기 시작한 차는 그대로 옆자리 트럭의 꽁무니에

보조석 뒷문과 펜더 부분까지 긁히면서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고

그제야 엑셀에서 브레이크로 발을 옮겨 차를 멈췄다.

내 사고도 그대로 한참을 멈춰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트럭 주인에게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차에서 내려 처참하게 긁히고 찌그러진 내 차를 마주하고

또 한참을 멈춰 있다가 간신히 트럭 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트럭 주인은 트럭 후미 장식에 긁힌 내 차를 보고는

오히려 괜찮다고, 얼른 고치라며 날 위로해 주고 가버렸다.

며칠 전 아침 일이다.


벌써 운전경력이 20여 년이 되어간다.

20대 중반부터 운전을 시작했으니 어찌 보면 이런 초보 같은 실수는 안 해야 맞는데

난 아직도 크고 작은 사고를 내고 있다.

다행인 건 다른 차와의 접촉사고가 아닌

셀프로 내 차를 흠집 내는 프로셀프흠집러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타고 있을 땐 늘 운전 전에

‘안전 운전해야 한다. 아이들이 타고 있다’며 집중해서 운전 하지만

혼자 타고 다닐 땐 아무 생각이 없이 기계적으로 운전하다가

잊을 만하면 이리저리 긁히고 박는다.

이번에도 남편이 늘 커브를 좁게 도니 크게 돌아라, 후진할 때 천천히 주의하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그때만 알았다며 대충 대답을 해 놓고는 또다시 커브를 돌다 사고를 낸 것이다.

이쯤 되니 난 주의력결핍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시대에 주의력결핍인 것이 큰 문제도 아니고 정신과를 가는 것이 큰 흠도 아니지만

그쪽으로 1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라서 당혹감은 공포로 바뀌었다.

정신없이 인터넷을 뒤지며 주의력결핍에 대한 글도 읽고 테스트도 찾았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함은 날 더 답답하게 했고

간이지만 테스트를 했는데 정말 내가 주의력 결핍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되자

테스트는 하지도 못하고 급격한 우울함이 날 파도처럼 덮쳐왔다.

나는 왜 같은 실수를 자꾸 반복할까?

왜 같은 실수를 하며 내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걸까?

힘들게 번 돈을 수리비로 지출하는 것도 속상하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운전하면 하지 않을 실수를 자꾸 반복해서 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이유가 뭘까 정말 내 머릿속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내고 싶다.

한 참 고민 후 조금 전 나는

차 대시보드 잘 보이는 곳에 작은 메모를 하나 붙여 놓았다.


“코너 돌 때 신경 써서 돌기,

 후진할 때 천천히.”


또 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면 꼭 병원에 가보기로 결심하고서

마지막으로 날 한 번만 더 믿어 보기로 했다.

내 머릿속 회로 어딘가 깜박 깜빡 전압이 불안정한 곳이 이 메모를 보고

각성 스위치를 세게 눌러 오동작을 반복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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