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 D Jul 07. 2022

013. 바람에 흔들린 나무처럼


얼마 전 바람이 매섭게 불었던 날이었다.

전날 밤에 바람소리가 너무 커서 잠을 설쳐서인지 아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날이 밝았지만 바람은 잦아들지 않아서 온종일 바람이 흔들어대는

모든 것들의 울음소리가 하루 종일 귓가에서, 머릿속에서 윙윙거렸다.

그래도 집안일은 해야 해서 청소를 하려고 창문을 연 순간

그 조금의 틈으로 강하게 바람이 밀고 들어와서는

내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헤집어놨다.

인상을 쓰고 고개를 드니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고작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거에도 짜증이 난 나와는 달리

방향을 잃어버리고 미친 듯이 날뛰며 작은 틈 사이에도 비집고 들어가 바람이 흔드는대도

나무는 자리를 지키며 묵묵하게  흔드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괴로움은 이기지 못한 듯 요란한 소리들이 한데 뒤섞여 들려와

그걸 쳐다보는 내 마음까지도 심란하게 흔들렸다.

그렇게 온종일 시달린 나무들은 바람이 좀 잠잠해진 다음날이 되어서야 가지들을 아래로 내리며

쉬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아래에는 나무들에게서 떨어진 나뭇잎, 작은 가지, 설익은 열매들이

한데 섞여 패대기 쳐져 있었다.

그런데 왜 내 눈엔 나무들이 시원해 보이지?

심지어 바람을 이긴 열매, 가지, 잎사귀들은 전보다 더 싱그럽게 자라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흔들린 나무가 되고 싶다는.

몸은 풍파에 휘청거릴지언정 의지만은 마음에 단단히 뿌리내려 이겨내고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며 한탄하기보다는 지켜낸 것을 아끼며 잘 키워내는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012. 그날 벼락 맞은 벼들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