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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D Jun 30. 2022

012. 그날 벼락 맞은 벼들은

내 마음 관찰일기

비가 오면  처마에 앉아 번개가 치는걸 한참 구경했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요란한 천둥을 동반한 번개가 땅에 내리 꽂히는 벼락을 기다렸었다.

그 집은 아빠와 함께 사는 마지막 집이었다.


IMF로 아빠는 사업도 어려워지고 건강도 잃으셨다.

살던 집은 은행에 넘어가고 아빠가 하시던 공장 한켠을 수리해서 살게 되었는데

집 앞은 너른 논이 펼쳐진 곳이었다.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아빠가 결국 돌아가셨을 때

내가 대학을 가도 되는 걸까 마음이 참 괴로웠다.

남들과 같이 대학 가서 아무 걱정 없이 대학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과

빚만 남기고 돌아가신 아빠, 혼자 4남매를 키워야 하는 엄마를 보면 대학을 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반반씩 내 마음속에서 매일매일 싸워댔다.

어찌 되든 당장은 수능을 봐야 했고 공부를 해야 했기에

공장 주방으로 쓰던 별채 같은 건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을비인데도 장맛비처럼 천둥번개와 바람을 몰고 와서 사납게 내리는데

그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나무들이 꼭 내 마음 같아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벼락이 논으로 순식간에 내리 꽂히는데

나도 모를 희열을 느끼며 새시문밖으로 나가 처마 아래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천둥번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벼락이 다시 꽂히기를 기다리며.


벼락이 논으로 내리 꽂히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벼들은 옆으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는데

찰나의 그 순간은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내 눈에 각인되었다.

그 후로 그 집에 사는 동안 비가 오는 날이면 천둥번개가 칠까 처마에 앉아 비 오는 걸 구경했었다.


오늘도 비가 사납게 내렸다.

천둥번개가 칠까 잠시 기대했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흘러버린 시간처럼 그때의 강렬했던 각인은 어느새 흐린 흔적만 남았다.

아빠의 멈춰버린 시간에 도달해 버린 나는

문득 기억이 났다.

그때 벼락을 맞고 하릴없이 바닥으로 눕던 그 벼들은

무사히 잘 추수되어 나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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