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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D Jul 19. 2022

015. 취향의 고정

열심히 취향 고정 중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의 옷차림이나 듣는 음악, 사고방식을 보면서

왜 저런 무늬와 색의 옷을 입으시는지,

왜 저런 정신없는 혹은 너무 청승맞은 트롯을 들으시는지,

왜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시는 건지

답답하기도 하고 조금 꺼려지기도 했다.

물론 세련되고 멋진 어르신들을 뵙기도 했지만

나를 스쳐가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이러했다.


나는 늙지 않는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던 시절에는

무엇을 보던 듣던 곧 나만의 것으로 당연히 승화시킬 수 있고

나 역시 그것들은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련되어 보이거나 멋져 보이거나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면

비슷하게 따라 해 보고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늙고 있다.

내 엄마도 늙고 있고 내 시부모님도 늙고 있고 우리 집 고양이도 늙고 있다.

흰머리도 어느새 부쩍 늘었고 내 옆의 같이 나이 들어가는 남편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새 나는 사진 속 아빠보다 나이를 더 많이 먹었고

내 아이들은 키가 나보다 더 커지려고 하고 있다.

이제는 요즘 잘 나간다는 그림들을 봐도 저게 왜? 싶은 생각을 간혹 하게 되며

아이들이 듣는 걸그룹의 노래 가사가 귀에 꽂히지 않는다.

무언가 배우는 것도 귀찮고 찾아서 보는 건 더 귀찮아졌다.

 플레이리스트에는 내가 10 후반에서 30 초반까지 즐겨 들었던 음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 음악을 들어야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기분이 편해진다.

이젠 구두나 샌들 같은 건 돈을 주고 신으라고 해도 못 신겠어서

내 신발장엔 운동화와 크록스가 채워져 있고

스타일은 제쳐두고 몸을 조이지 않는 편안함만을 찾아 옷을 사고 있다.


그렇게 산 옷을 입어보던 내게 큰애가 '왜 엄마는 아줌마 같은 옷만 사냐'고 물었을 때

내 머리는 10톤급 해머에 맞은 듯 사고가 정지되고 말았다.

아줌마, 아줌마 같은 옷이라고?

그날 자려고 누운 침대 위에서 뒤척이면서

정말 나는 아줌마 같은 옷을 산 것일까,

내가 지금 간과하고 있는 건 뭘까,

지금의 내 모든 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맞는 건가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해서 내려진 결론은,

'나는 지금 아줌마가 맞으며 몇십 년 뒤엔 할머니가 될 예정이다.

고로 내 취향은 이미 내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고정되어가기 시작했다.'이다.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왜 어르신들이 그런 취향을 갖게 되는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되고 있다.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하는 확고한 내 취향을 찾아서 내 인생이 고정되어 가는 게

늙어가는 것이라면

나쁘지 않다.

괜찮다.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바라건대 사고만큼은 유연하게 남아

말이 통하는 어르신으로 진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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