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3]
한 달 전쯤 회사에 잠깐 일을 보러 들렀다가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상황에 있던 친구라 종종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눴더랬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중충한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회사 옥상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결혼한 지 1년 즈음된 그 친구는 아직 아이가 없었고, 최근 출산하고 육아휴직을 한 나의 현재 상황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그 친구가 물었다. "과장님, 와이프 하고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힘들지 않아요? 괜찮아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답했다. "음, 생각보다 괜찮아. 당연히 나도 다투기도 하고 가끔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 '괜찮아'가 아니라 '괜찮은 것 같아'라고 답한 것은 그저 습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잠깐의 머뭇거림이었을까? 어쨌든 그 친구의 질문에 잠시 '우리'를 되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나 오늘 힘들었쪄~", "울 애기 기저귀도 갈고, 밥도 먹이고, 트림도 다 시켰어, 나 잘해찌!"
위 대사들은 실제 내가 쓰는 말이다. 나도 안다,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40대 남자가 하는 말 치고는 심각하게 유치한 수준이라는 걸. 그런데 내가 이런 유치함을 맘껏 표현하는 상대가 이 세상에 단 한 명 존재한다. 당연히 짐작하듯이 나의 아내가 그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우리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말이 많지 않은 성향이고, 회사에서 어느 분량 이상의 말을 쏟아내고 퇴근하면 집에서는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 입을 여는 것도 많은 힘이 드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금쪽이 방송(정확한 프로그램 제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른다.)을 늘 재밌게 보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러다 '정상적 퇴행'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우리의 삶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당연히 우리 부부도 모든 대화가 저렇게 진행되진 않는다. 일상적인 대화가 70%, 유치한 (정상적) 퇴행의 언어가 대략 30% 내외를 차지하는 것 같다. 유치함 레벨이 올라가는 순간은 서로에게 조금 징징대고 싶을 때다. 그 부분이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회사(지금은 육아)나 다른 일들로 조금 힘들 때, 혹은 내가 뭔가 더 많이 해서 좀 '징징'대고 싶을 때, '상대에게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도 해'라고 말하는 대신 퇴행 모드로 들어가 어리광을 피운다. 그럼 상대는 우쭈쭈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나를 안아준다. 인정받고, 안정과 평안을 찾는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인 이유는 우리의 육아방식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우리 부부는 현재 같이 육아휴직인 상황이다. 어딘가의 지원을 받을 여유는 전혀 없고, 부부가 아이 한 명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부부 둘이서 시간을 정확히 나누어 한 명이 아이를 전담 마크하는 동안 한 명은 쉬는 방식이 아니라,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은 최대한 같이 나누어서 돌본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분유를 먹일 때 A가 아이를 안아 달래면, B는 얼른 분유를 준비한다. 47도로 세팅된 분유 포트의 물을 젖병에 조금 채워 넣고, 200~240mg의 분유를 덜어 넣고, 다시 물을 분유에 맞게 채우고, 사출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온도가 살짝 떨어질 때까지 잘 섞는다. A는 그 와중에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위한 클래식 음악을 튼 다음 수유의자에 앉아서 분유 먹일 준비를 한다. A가 분유를 먹이는 동안 B는 그간 채워져 있던 젖병들을 씻거나 다른 일을 하고, 분유 먹이기가 끝난 A는 트림시키기를 시작한다. 그럼 B는 부부가 먹을 아침을 준비한다. 완벽하게 물 흐르듯 진행되지는 않지만 ― 당연히 초반에 어느 정도 트러블은 있었지만 ― , 충분히 만족스러운 팀워크가 만들어졌다.
사소한 거지만 우리만의 방식을 찾은 것도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 난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아내가 먼저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어떤 맥락에서 쓰더라도 그 말이 생각보다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짜장면 먹을 것 같아.'라고 짜증 지수 상승에 대한 사전 예고를 상대에게 해준다. 그럼 상대방은 당장 공감해 주거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 준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내 감정에 공감하고 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소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겪은 이후 우리는 깨달았다.
물론, 아까 그 후배의 질문처럼 하루 종일 붙어 있지는 않는다. 1화의 글에서 썼듯이 어느 정도 개인시간을 보낼 수 있게 서로 배려를 해주고 있고, 일정시간 1인 케어가 가능할 정도로 부부 모두의 육아레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오늘 단독으로 7시간 20분을 아이와 있었다. 아자!)
시간 배분 없이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는 조화로운 팀워크, 더 많이 일하고 귀엽게 징징대는 정상적 퇴행, 사전 예고로 짜증지수 폭발 원천 차단의 삼단 체계가 아직은 잘 작동하고 있다. 비단 육아휴직을 같이 하는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 삶에도 계속해서 잘 작동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