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5]
라고 아내가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처음에는 카톡 연락에서, 집에 들어와서는 지상 최고 존엄이신 그분의 레이저 눈빛에서 선명하게 저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공동 육아 중인 제가 회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 1시가 다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아, 오늘은 왜 반말로 쓰지 않고 존댓말로 쓰냐고요? 위 문단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어보시겠어요? 저는 지금 아주 공손하고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글을 쓰고 있답니다. (제 아내가 이 글을 읽을 예정이거든요.)
아내는 종종 이야기합니다. "서울 좋아, 시골 싫어". 네, 여긴 시골입니다. (행정구역상/개발단계상 시골이라고 하긴 좀 무리가 있지만, 아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서울 사람입니다. (경기도에 살았던 시기가 좀 있어서 제가 아내보고 서울사람 아니라고 놀리지만, 지금은 잠시 저렇게 말했던 과거는 잊도록 하겠습니다.) 아이 양육과 우리 부부의 개인적인 계획에 따라 서울사람인 아내는 연고도 없는 시골마을로 ― 저의 회사 근처로 ―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지 몇 달, 저는 육아휴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회사 사람들과 종종 술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희 회사는 꼰대 회사인 것입니다. 아, 회사가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문제인 것 아니냐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늘은 회사 탓인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엊그제도 절대 제가 먼저 그렇게 술 마시자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회사 사람들이, 여름밤의 정취가, 간만에 흥겨웠던 분위기가 저를 술 취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술주정뱅이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아내에게 솔직히 말 못 했지만 그날 조금 일찍 도착한 회식 자리에서, 먼저 나와있던 대리님과 시원한 맥주 한잔을 시켜 먹을 때부터 살짝 느낌이 왔습니다. 기분 좋은(?) 불안함이었습니다. '아, 이거 분위기 너무 좋은데? 맥주가 왜 이렇게 맛있지?' 2층 창가 쪽 자리, 아직은 해가 넘어가려면 시간이 남은 늦은 오후, 주변에선 사람들의 즐거운 대화 소리가 배경으로 살짝 깔리면서, 활짝 열린 창 밖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한 모금 ― 이라기보단 한입 가득 ― 마신 시원한 맥주는 목을 쏴 타고 넘어가며 기분 좋은 청량감을 선사했습니다. 네, 저는 이미 제가 취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즐겁게, 마시고, 마시다, 저는 예정되어 있던 취함에 도달해 버렸습니다.
만약 그날 밤, 우리 애기가 그렇게 울어대지 않았다면, 마침 밖에 갑작스레 비가 퍼부어 아내가 걱정하지 않았다면, 집안에 갑자기 커다란 벌레가 들어와서 아내를 기겁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저는 아내에게 반성문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난주에도 회식을 한 것은 잠시 기억 저편으로 미뤄두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말처럼, 저는 분명히 취하였던 것이며 지금 와서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고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후회해 봤자 어쩌겠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인 걸요.
다른 그 무엇보다, '애가 그렇게 울었는데, 만약 갑작스레 더 심해져서 병원에 갈 일이 생겼었다면 어쩌려고 그랬어?'라는 아내의 추궁에 도저히 아무리 머리를 회전시켜 봐도 ―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안 돌아간 게 아닙니다 ― 할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건 정말 ― 궁서체로 ― 반성합니다.)
맥주 한 모금에 이미 취함에 도달할 스스로를 예견한 것처럼, 저는 메타인지는 어느 정도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 절제는 또 다른 이야기이지요. 분명 불안함을 감지하고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여름밤 2층 술집 창가에서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에 가볍게 날아가버릴 만큼 저의 절제력은 강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강성울음'을 자랑스레 선보이던 아기의 영상을 아내가 카톡으로 보내왔을 때도, 저의 절제력은 짙어져 가는 혈중 알콜들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기록으로 남겨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물론, 술 마실 수 있지요. 아내도 당연히 그건 이해합니다. 다만 상황을 생각하고, 스스로 절제하여 관리할 수 있는 정도까지 마셔야 하는 것이지, 아직 목도 제대로 못 가누는 조그마한 생명체를 놔두고 그렇게 취해선 안 되는 거니까요.
저는 아마 앞으로도 술을 마실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내의 경고 메시지가 제 폰에 도착하는 그 순간, 무조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에 오겠다고 스스로 약속해 봅니다. 더 발전한다면 정말 스스로 절제하며 마시는 상황이 이상적일 겁니다. 솔직히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종종 상상하는 상황이기도 한데, 만약 아기가 커서 '아빠, 술 냄새 싫어!' 이런 말을 한다면, 정말 끊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것입니다. (여보,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