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였을까?

[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6]

by 그냥 하자
20250618_190749.jpg "너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행복....인 거지?"

오늘 아내는 출산 후 처음으로 새치 염색을 하러 자주 가던 서울에 있는 단골 미용실을 갔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슈퍼울트라짱거대 짜장면을 먹었다.(3화 참조)


2화에 적었던 2번의 위기 이후 한동안은 잠잠한 일상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며칠 동안 너의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다 오늘 또 하필 아내가 자리를 비운 와중에 너와 나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젠 울음소리에 깃든 에너지가 거대하고 날카롭다. 더 이상 '응애~'거리며 울던 작은 생명체가 아니다. "크하앙~ 크아앙~ 크아앙!", 저 울음소리는 흡사 음파 공격 같았다. 저 울음소리가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았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기억도 흐릿하다. 아내가 나가고, 품에서 재우려고 했는데 잠을 자지 않아 침대 위에서 같이 자려고 누웠다. 물론 바디 필로우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나는 옆에서 손만 뻗어서 다독이다가 아기가 자면 나는 옆에 떨어져서 자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울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아내가 '잠 퇴행기'라는 게 있다고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잘 자던 시기가 이어지다가 이유 없이 잠을 자지 않고 운다면 '잠 퇴행기'를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웃긴 게, 이놈의 육아는 그냥 편안하게 넘어가는 시기가 하나도 없다. 태어난 직후, 30일, 50일, 100일, 3개월, 4개월, 8개월, 12개월 그냥 그 모든 시기들에 어떤 이름들이 붙어 있고, 그 모든 시간들이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잠 퇴행기라서 울고, 목욕하면 울고, 목욕하고 나서 로션 바를 때 또 울고, 젖병을 물려서 분유를 먹다 켁켁거려서 뺏는데 그럼 또 뺐다고 울고, 졸리면 졸려서 울고, 한번 울음보가 터지면 이유는 상관없다. 그냥 그 울음소리에 취하면 무한궤도처럼 반복된다. 울고, 또 운다.


나는 우리 아기가 순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정도로 만만해 보였어!'라는 듯 하이톤으로 에너지를 가득 담아 우는 너를 안고 나는 정말 멘붕에 빠졌다.


노캔 이어폰을 무조건 먼저 찾아서 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어느새 나도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어라, 그런데 냄새가 났다. 아뿔싸, 그 와중에 또 응가를 했구나. ('응가를 해서 기저귀가 축축 했겠구나. 그래서 불편해서 울었구나, 우리 애기 고생했네'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그 순간엔 그런 정상적인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응가를 혼자 처리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짜증이 가득한 상황에서 음파 공격을 퍼붓는 아기를 달래 가며 하는 것은 생각보다 난도가 높다.


정말 마음을 내려놓는다. 응가도 처리했고, 이제는 좀 나아지겠지. 왜 이런 일은 혼자 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일까? 아니, 혼자 있어서 내가 더 스트레스에 취약해져서 더 쉽게 무너진 것일까? 뒤늦게 노캔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노래 두 곡을 들었으니 적어도 5분은 지났을 텐데, 울음을 그치지를 않는다. 이쯤 되면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거의 20분을 넘게 운 것 같다. 근데 걱정보다 내 인내심이 먼저 바닥났다. 목베개를 내팽개쳤다. 다 엎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에게 영상을 찍어 보냈다.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인데, 미용실에 도착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데 내가 이기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이 고통을 알리고 싶었다. 찜통더위로 에어컨을 틀어도 쾌적하지 않은 무거운 공기에, 고막을 파고드는 울음소리가 이어지니 이건 정말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내 인내심이 참으로 얕고도 얕다는 것이었고.


결국 너는 내 품 안에서 잠이 들었다. 노캔 이어폰에 감사하며, 수유의자에서 불편하게 앉아 내 어깨에 침 흘리는 너를 안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띠띠 띠띠띠띠', 아내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살았구나. "나, 짬뽕 먹으러 갈래." 다짜고짜 선언한다. 스트레스받을 때 난 먹어야 한다. 오전 첫 수유 직후 같이 밥을 먹고는 아내도 나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서울 나들이를 갔음에도 혼자 밥도 먹지 않고 머리 다듬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온 아내도 배가 고팠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참 이기적이다. "응, 다녀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아내가 대답했다. 문을 닫고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건 아닌데' 싶었다. 그렇지만, 짬뽕은 먹어야겠다.


짬뽕을 먹고 카페를 가려던 생각을 바꿔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뭐 먹을 거 사 가지고 갈까?" "아니 괜찮아". 집에 들어와 보니 아내는 오렌지하고 단호박 남은걸 식탁에 올려놓고 먹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한참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한밤중까지 있을 기세로 나가더니, 빨리 들어왔네?" "자기도 밥 제대로 못 먹었을 텐데, 혼자 힘들다고 나가서 먹고 와서 미안해"


잠을 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은 천사 같다. 혼자 힘들다고 쌩하고 나가서 혼자 맛난 거 먹고 들어온 철없는 남편을 이해해 주는 아내의 모습은 천사 중의 대천사이다. 여보, 고마워. 잠 퇴행기 끝나면, 좀 나아지겠지? 제발?


(*원래 다른 주제 글을 발행할 계획이었는데, 오늘 이 사건을 기록해놔야겠단 생각에 뒤늦게 글을 써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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