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4]
가을 겨울쯤 운전을 하면서 논밭이 있는 농촌 지역을 지나다 보면 커다랗고 하얀 마시멜로들이 보인다. 이제는 그것들이 가축사료로 사용할 볏짚을 싸놓은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처음 봤을 때는 하얗고 동그란 그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집에도 미니 마시멜로들이 생겨나고 있다.
내 MBTI는 INTP인데 가끔 T 대신 F가 나올 때도 있다. (아내는 항상 자기한테만 T인 것 같다고 하지만.) 작년 회사 다닐 때 ENTP도 한번 나온 적이 있긴 하지만 'N'과 'P'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통 MBTI 끝에 있는 J를 두고 계획형이라는 말을 한다. 나는 J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데, 회사에서 내가 P라고 하면 조금 놀라는 눈치들이다. 태생은 꼼꼼한 사람이 못 되지만, 그래도 일은 나름 계획적으로 한 것처럼 보였나 보다. 감사할 따름이다.
각설하고,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 슬슬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정보검색을 하면서, 새로 살 것들과 당근으로 중고 물품을 살 것들, 선물로 받을 것들 등을 정리했다. (이 정리도 아내의 은근한 다그침이 꽤나 있었을 정도로 무지 시간이 걸렸다. 난 절대 J는 아닌 것이다.) 그 와중에 한 가지 긴가민가 했던 물품 중 하나가 바로 기저귀 휴지통이었다.
일견 이해는 갔다. 쉬야든 응가든 기저귀를 처리하려면 냄새가 날 터이니 냄새가 최대한 덜 나면서 기저귀를 모아 버릴 수 있는 장치는 필요한 것 같았다. 근데, 그냥 왠지 사기가 싫었다. 집에 휴지통이 없는 것도 아니고, 상술 같았다. 저걸 사게 되면 그 안에 들어가는 전용 리필 봉투를 또 사야 한다. 호환되는 다른 제품을 살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관련된 별도의 물건을 계속 사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부분에 은근히 고집이 있어서 볼일 본 후의 기저귀를 처리할 다른 방법이 없는지 인터넷을 뒤졌다.
빙고, 방법은 별거 없었다. 요리할 때나 청소할 때 가끔 쓰는 니트릴 장갑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아내는 긴가민가 했으나 내 고집을 알기에 '일단 해보자, 혹시 불편하면 그때 사고' 정도로 '안 사는 것을 허락'해 줬다. (음?) 지금 우리의 아기 응가 처리 절차는 다음과 같다.
아기의 엉덩이에서 향긋한 냄새가 피어오르면, 신호를 보낸다. "선생님~ 우리 겸둥이 응가 하셨어요~" 그러면 아기를 안고 있던 A는 기저귀 갈이대 ― 화장실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 로 간다. B(보통 내가 B역할이다.)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튼다. 따듯한 물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틀어놓고 오른손에 하얀 니트릴 장갑을 낀다. 그리고 아기 용품 중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아기 비데 ― 여전히 왜 이 제품 이름이 '비데'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해당 제품 마케팅 팀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 를 세면대에 올려놓는다. 물 온도가 적당히 따듯해졌다 싶으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VIP님 오시면 됩니다~" 그럼 A가 아기를 데리고 오고, 이제부터는 합동 공연이 시작된다. 기저귀를 벗기고 '응'들을 처리한 후 A가 얇은 블랭킷으로 아기를 감싸고 다시 기저귀 갈이대로 향한다. B는 아기 비데를 정리하고 니트릴 장갑으로 '응 기저귀'를 처리한다.
여기서 마시멜로가 탄생한다. 니트릴 장갑을 낀 오른손으로 '응 기저귀'를 잡고 돌돌 말아서 2번 정도 감싸면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마시멜로 기저귀'가 만들어진다. 냄새는 절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걸 해본 사람은 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이제 기저귀 갈이대 밑에 있는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마시멜로를 집어넣는다. 이로써 응가 처리 절차가 완료되었다.
이것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다양한 협의와 조정을 거쳐 정리되었다. 3화에 언급한 '47도'로 세팅된 분유 포트 또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분유포트를 세팅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아마도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어쨌든 계획적(J)이진 않지만 나름 논리적(T)인 나의 성향(이라고 쓰고 아내가 허락해준이라고 읽는다)을 감안하여 기저귀 전용 휴지통 대신 '마시멜로 기저귀'를 받아들여준 나의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끝내야겠다. 고마워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