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36~37 - the end.

마지막 빈, 향긋한 커피

by 그냥 하자
20251022_130838.jpg A Cup of Cold Brew, A Cup of V60

빈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늘 하듯이 둥이 기저귀 갈이, 이유식 및 분유 먹이기 루틴을 진행했다. 오늘은 공항 가기 전에 잠깐 짬을 내어 시내에서 밥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려고 계획했기에 이유식 타임을 조금 당겨서 진행했다. 원래 체크아웃은 오전 10시였으나 어제 집주인에게 연락해 본 결과 청소업체가 조금 늦게 올 거라며 짐 놔두고 다녀와도 된다고 확인을 했었다. 11시쯤 집을 나와 마리아힐퍼거리에 미처 가지 못했던 중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은 KungFu Bao고, 카페는 Cafe Glas이다. 요약하자면 둘 다 아주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쿵푸바오는 찐빵 스타일의 Bao와 우리네 일반 만두 스타일의 Gyoza 메뉴들이 메인인 길거리에 있는 작은 중식당이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3개를 시켰다. 커다란 바오 하나, 교자 하나, 그리고 라멘 하나. 커다란 찐빵 스타일 바오도 만두피가 두껍지만 부드러웠다. 교자도 무척 맛있었고 따듯한 국물이 그리웠던 터라 라멘도 무척 만족스럽게 먹었다. 먹고 나서 Cafe Glas로 향했다.


지난번 방문했었을 때의 콜드브루 맛이 잊혀지지 않아 꼭 한번 더 가보고 싶었기에 마지막 여유를 커피 한잔에 쏟아부었다. 이번엔 콜드브루 한잔과 V60 필터 커피 한잔을 시켰다. 평일 오후 1시의 한가한 시간대였기에 우리는 조용히 커피를 음미할 수 있었다. V60가 뭔지 찾아보니 드립커피 내릴 때 사용하는 드리퍼라 한다. 바리스타의 손맛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원두의 원산지도 모르고 저 V60란 것도 처음 들어봤지만 커피는 정말 좋았다. 아주 살짝 산미가 깔리고 또 아주 살짝 과일향이 났다. 콜드브루와 비슷한 맛인데 또 조금 달랐다. 유명 카페 3대장은 각자의 그 역사와 전통미로 사람을 끌지만, 이곳은 정말 커피 맛 하나로 내겐 1등이었다.


그렇게 맛난 커피로 빈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겨 나왔다. 13A를 마지막으로 타고 중앙역으로 갔고, 2명이서 4유로짜리 철도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처음 비엔나 공항 도착해서 숙소로 올 때는 택시를 탔었고 사실 이번에도 아내가 그걸 타자고 했는데 찾아보니 가격이 더 오른 것이다. 짠돌이 기질의 내가 이번에는 공항철도를 타고 가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택시가 50유로가 넘는데 철도가 단돈 4.4유로라니 너무 비대칭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이 글을 시점에서 되돌아보았을 때,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의 선택은? 역시 '아내 말을 잘 듣자'라는 결론으로 수렴한다. 짐의 개수와 사이즈는 출국할 때와 전혀 차이가 나지 않았다. 큰 캐리어 2개, 작은 캐리어 하나, 보스턴백 2개, 백팩 2개, 보조가방 1개. 처음에 내가 생각한 것은 버스 1번 타는 것만 고생하면 공항철도 타고 바로 터미널 도착할 테니 별 문제없지 않겠어? 였다. 그런데 고작 그 버스 1번으로 이동하는 게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 물론 돈은 조금 아낀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조금 낑낑대며 도착한 터미널, 다행히(?) 우리가 탈 비행기가 조금 지연되어서 수속 시간은 여유로웠다. 아내가 택스리펀을 하러 다녀오고 나는 대한항공 카운터 앞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오고 가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택스리펀 담당자가 전체 물건 확인해야 한다 해서 아내가 씩씩대며 캐리어 2개를 가져갔다가 오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다행히 처리는 잘 된 것 같았다.


이윽고 우리 짐을 부치는 시간, 사실 이 것 때문에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도 무게가 오버되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집에서 체중계로 23kg을 정확히 맞췄다고 생각했는데도 공항에서 계측할 땐 조금 오버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집에 체중계도 없었기에 자체 검증도 못 해본 상황이었다. 무게는 조금이 아니라 '꽤' 오버가 되었는데, 다행히 한국인 직원분께서 '아기 동행이라 이번에는 편의를 봐 드리겠지만 다음에는 꼭 무게를 맞춰달라'라고 하시면서 통과를 시켜주셨다. 만약 깐깐한 현지 직원이 'Nope'이라면서 돌려세웠다면 그 자리에서 큰 무게 나가는 거 빼서 기내용 가방에 옮겨 담느라 무지 고생했을 텐데, 그분 덕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독어도 무지 잘하시던데 멋져 보였다. 갑자기 예전에 마케팅 부서 있을 때 친했던 대한항공 직원들도 생각이 났다. 그들의 삶이 이러했겠구나 다시 한번 생각했다.


보안검색 때도 둥이 이유식 제조용 쵸퍼의 블레이드하고 기저귀 갈 때 쓰는 클리닝 액체 때문에 걸렸지만 유아 관련 용품이라고 하니 둘 다 ETD(Explosives Trace Detection) 검사를 하고는 문제없이 보내줬다.


출국심사도 별일 없었는데 신기했던 것이 우리 담당 출국심사 직원이 입국심사 했을 때와 같은 사람이었다! 사실 처음 딱 대기줄에 기다리고 있을 때부터 긴가민가 뭔가 낯이 익다 했는데, 그분이 여권을 스캔하더니 '오, 입국 때도 제가 했네요.'라고 하는 거 아닌가. 별일 아니긴 하지만 그 말을 하며 즐겁게 웃어주던 모습에 마지막 여정의 마침표를 찍은 발걸음이 가벼워졌었다.


면세구역 들어와서 게이트로 걸어가는 길, 방금 전에 작고 신기한 우연에 즐거워했는데 나와 아내는 그 짧은 거리를 걸어가면서 잠시 또 투닥였다. 정말 별거 아닌 것이었기에 적기도 민망한데 우린 왜 그랬을까? 아니 나는 왜 그랬을까? 육체적 피로도 높았고 정신적으로도 이제 여행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좀 해이해지고 그랬긴 했을 것이다. 그래도 '안 그럴 수 있었을 텐데 또 이랬구나'하고 살짝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비행기 탔다. 베시넷 좌석이라 빈 들어올 때와 비슷한 환경이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그간 쌓인 피로도, 그리고 '밤 시간대' 비행이라는 것이었다. 한국 출발 때는 낮시간이어서 그랬는지 둥이는 오히려 잘 먹고 잘 잤었다. 물론, 조금이라도 칭얼거릴 기미가 보이면 안고 일어서서 달래줬기에 그것도 가능했던 거지만. 여하튼 밤 시간대가 다가와서 둥이를 재워야 하는데, 둥이는 도통 잠을 자지 않으려 했다. 첫 번째 기내식을 먹고 난 다음 도착 예정 지역의 시차를 고려하여 기내는 일찍 소등을 하고 어두워졌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우리 둥이는 잠을 자기 싫었나 보다. 정말 갖은 수를 써도 잠들기를 거부했는데 아기띠를 하고 안고 있으니 그나마 눈을 좀 붙이길래 계속해서 안고 재웠다. RIP, 내 허리 + 와이프 허리. 그래도 그런 노력 덕분에 주변 여객분들께 민폐는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 내리기 전에 승무원께서 '한숨도 못 주무셨죠.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격려를 해준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의 노력을 알아줬구나 싶어서.


한 달여를 넘게 비워놨던 집은 생각보다 싸늘했다. 한국은 빈만큼 추워져 있었다. 얼른 짐을 집안으로 들여다 놓고, 보일러를 돌리고 둥이 분유를 먹였다.


드디어 35박 36(+1)일의 오스트리아 빈 여행이 끝이 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래도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 체류인으로서 그들의 삶과 일상 속에 어느 정도 녹아들어 갔고 빈이라는 도시가 편안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생에 가장 길었던 해외 체류였다. 혼자도, 둘도 아닌 셋이서 하는 여행, 아기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많이 아프기도 했다. 내가 아픈 건 혼자 감당할 몫이지만 가족이 아픈 것, 특히 아기가 아픈 것은 참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아플 때 곁에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의 소중함 또한 뼈저리게 느꼈다.


빈필과 뮌헨필의 공연을 이틀 동안 연달아 보았다. 84세, 백발의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정말 에너지가 넘쳤다. 작은 째즈카페 1열에서 느꼈던 째즈의 열기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인생 오페라는 여전히 런던의 '오페라의 유령'이고 인생 째즈는 이날 부로 빈의 'ZWE-Project two'가 되었다. 미술관은 통틀어 17번을 방문했다. 모네도, 고흐도, 클림트도 좋았고, 케테 콜비츠와 마리아 아브라모비치도 좋았다. 분데스뮤지엄카드는 너무도 유용했다. 쇤부른 궁전 정원의 달리기는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빈 생활 초기에는 사람들이 무뚝뚝하다 느꼈지만, 갈수록 사람들의 친절함을 많이 경험하기도 했다. 특히 유모차를 들고 어딘가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오려고 할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다가왔었다. 아마 한국에서라면 드물게 경험했을 일들이 여기선 일상이었다. 땡큐베리머치라고 말했을 때 유어베리웰컴의 화답 또한 따듯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았다. 길거리 곳곳, 흡연가들이 내뿜는 담배연기는 여전히 싫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 이 시점에 되돌아본 빈의 사람들은 따스한 사람들로 기억될 것 같다.


여행은 끝이 났지만 삶은 이어진다. 한국에서의 오늘 하루, 내일 하루 또한 내게 주어진 삶의 여행이라 생각해야겠다. 생각보다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사실, 어제 썼던 글 대로 아마도 끝없이,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내 앞에는 크고 작은, 낮고 높은 산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질 것이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많이 힘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정상에 올라보면 상쾌한 기분도 들 것이고, 내려올 때는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쉬이 내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 걷다가, 누군가와 함께 걷기도 할 것이고, 잠시 만나 같이 걷다가 헤어지는 인연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이에게 모든 순간은 늘 처음이다. 절대적으로 같은 것은 절대적으로 없다. 아이는 하루하루 커 갈 것이고 우리는 하루하루 늙어갈 것이다. 그래도 늘 처음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그 하루 안에서도 즐거울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힘든 일이 더 많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살며시 웃거나 행복하고 느낄 수 있는 작은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그 하루, 나름 견딜만하지 않을까?


35박 36일간, 재미나게 놀다 왔다. 힘들기도 했지만 많이 웃었고, 많이 행복했다.


Danke schön, Vienna. 안녕, 다시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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