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해마다 가을이면 외삼촌 네서 쌀이 온다.
두 가마 중 한 가마는 엄마랑 사는 오빠네
나머지 반 가마씩은 동생과 내게 준다.
조카포함 세 식구인 동생네나 엄마가 있는 오빠네나
세 식구 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쌀은 오빠에게는 두 배나 주는 것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지레 변명을 하고는 한다.
“내가 밥을 많이 먹어서 그래, 난 아무리 아파도 밥을 먹어야 살겠더라?”
그런가 하면 동생네 식구는 원래 양도 적지만
밥보다는 고구마나 빵 등 간편식을 자주 하다 보니 쌀 소비량이 그리 크지 않고
우리 집의 경우에는 현미와 백미를 반반씩 섞어 밥을 하느라
백미는 한 해에 40킬로그램을 다 못 먹는다.
마트에서 산 쌀과는 달리 시골 쌀은 날이 더워지면 벌레가 생겨
집안에 나방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한 번 생기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기 때문에
지난주에는 쌀부대에 담겨있는 쌀은 김치냉장고에 붓고
쌀독에 남은 것은 담가서 가래떡을 뽑았다.
행여 엄마가 이 사실을 안다면
“쌀 귀한 줄 모르고 배가 불렀네 배가 불렀어.”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밥을 많이 먹는다는 엄마가 입맛이 소탈한 편은 아니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뭐 드시고 싶으시냐고 물으면
입이 써서 아무 것도 먹고 싶은 게 없다며
‘아.무.거.나’ 먹겠다고 한다.
세상 그보다 어려운 대답이 없다.
도가니탕을 먹으러 가서는 냄새가 나더라고 하고
부대찌개를 먹으면서는 너무 매워서 먹을 수가 없다고 하고
갈비는 질기고 생선은 비리고 장어는 비싸기만 하지 하나도 먹을 게 없다며
뭘 그런걸 먹으러 갔냐고 한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야 식당을 잘 못 골라서라고 라도 할 수 있지만
집에서 차린 밥상이 마음에 안 들 때에는 대안도 없다.
재작년 봄, 엄마가 2주 동안 머물 계획으로 우리 집에 올 때
집에서 담근 짠지를 싸 가지고 왔다.
요즘은 짠지가 개운하고 좋다며.
동치미나 오이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까다로운 음식인줄 몰랐었다,
썰어서 적당히 소금기를 빼서 물을 부어 내 놓았는데
첫날은 짜다고
다음 날은 너무 굵다고
그 다음 날은 맹탕이라고 타박을 하셨다.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냉장고 구석에 한 토막 남은 그 것을
보기도 싫어 냅다 음식물 쓰레기에 버렸다.
숟가락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만 보고도
엄마 벌써 배부르구나? 라고 알아차리는 K2는
내 취향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안다.
우리 엄마는 연어와 아보카도를 좋아하고
잡채를 잘 먹고 과일 중에는 망고를 먹을 때 엄청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멕시코와 동남아 음식을 비롯한 대부분의 외국 로컬음식에 거부감이 없다고.
취향을 알고 있으니 기념일이나 가족모임에 식당을 선택하기가 쉽다고 한다.
음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짜다 쓰다 타박 한 적 없었고
특별히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조른 적이 없는데도 그렇다.
사실상 나는 먹는 것에 그다지 진심이 아니다.
음식이란 그냥 배가 고플 때 채울 수 있는 정도면 된다.
그렇다보니 나는 세상 제일 어려운 질문이
‘뭐 먹을래?’ 다.
누가 대신 시켜주면 좋겠다.
누가 대신 시켜줬는데 그게 맛있으면 그런 날은 행복하다.
메뉴를 결정하는 건 언제나 힘들다.
힘들다고 절대 ‘아무거나’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래 전 자주 가던 호프집 메뉴판에는
‘아무거나’
‘그때그거’
가 그 집의 스페셜 메뉴였던 것이 생각난다.
나 말고도 메뉴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혹시 엄마에게도 ‘뭐 드시고 싶으세요?’ 가 곤혹스러운 질문이었을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싫은 것은 많은데
자꾸 뭘 먹겠냐고 물으니 차라리 누가 결정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무거나, 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