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 하면 좋겠다고 생각 될 때

오늘은

by 이연숙



어쩌다보니 일주일에 영어 수업을 네 번이나 하게 됐다.

지역 내 오프라인 수업은 화요일에 한 번이고

다른 지역 온라인 수업은 주2회였다가 3회 수업으로 바꿨다.

분기별로 수강생 모집을 하는데

웬만한 곳은 대부분 이미 오프라인으로 개설했으나

유일하게 그 곳만 아직 줌으로 진행을 한다.

아마도 다음 분기부터는 현장 수업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한다.

거리가 멀어 교실 수업에는 갈 수 없는 나로서는 오히려 다행인 셈이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좀 비장해졌나보다.

애초에 등록했던 반은 주 2회 70분 수업이었는데

강사의 수업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취소를 하고 주 3회 50분 수업으로 다시 신청하는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까지 감수했으니 말이다.


영어회화 공부를 하게 된 것은 K의 미국 연수를 앞뒀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마침 살고 있는 지역 청소년수련관이 개관을 했고

방금 영국에서 건너온, 한국말 1도 모르는 크리스와

겁도 없이 원어민 영어수업을 시작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보조강사도 없이 영국인과 초급반 수강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 놓은 상황이라

수강생이나 강사나 속 터지기는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2007년 무렵이었다.

무슨 일이든 10년 쯤 하면 그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전문가가 된다고 했던가?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됐든 그 말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유엔 연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미드 정도 자막 없이 휙휙 봐 넘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원어민 영어교실 강좌를 전전하고 있다.

그나마 2020년에 미국에 다시 한 번 가기로 했던 계획이 코로나로 무산 되면서

영어 공부를 하는 목적도 따라 사라졌다.

이후로 영어는 목적이 아니라 그냥 습관이 된 것 같다.


미국 1년 살이를 하는 동안 커뮤니티 스쿨에 다녔다는 말에

미국살이 선배였던 친구 Y는


“세상에, 거기까지 가서 학교를 다녔어? 여행만 해도 1년이 얼마나 짧은데.”


라며 혀를 끌끌 찼다.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영어? 못해도 사는 데 불편한 거 하나도 없다.

미국에 사는 게 아닌 이상 영어를 사용해야할 상황이란 건 거의 쇼핑할 때뿐이었는데

짧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영어실력으로도

스타벅스 커피를, 그것도 라떼 그랑데로 마셨고

원피스를 샀고 신발 사이즈를 찾아달라고 하고 샀던 그릇을 반품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영화는 자막을 보면 되고 궁금한 표현은 번역기를 돌려보면 된다.

그런데 딱 한 번, 영어를 잘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있었다.


4년 전 오늘 페이스북의 내 상태가

‘10년은 늙은 것 같아요.’

라고 돼 있었다.

그 날의 여행기록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스페인 여행 중 그 날은 그라나다에 있었다.


20220515영어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jpg


동급 호텔에 비해 조식 메뉴가 좋다고 했다.

객실 호수를 말하자 코에 피어싱을 한 직원이 경쾌한 목소리로

아무 자리에나 앉으면 된다고 했다.

K와 창가 2인석을 눈길로 주고받으며 바로 음식을 가져왔고

K가 다시 커피를 가지러 갔을 때였다.

머리칼은 성글고 배가 나온 외국인 남자가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여긴 내 자리고 내가 음식 가지러 간 사이 네가 앉았어.”


라며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냅킨을 움켜쥐더니


“이건 내꺼니까 가져갈 거야!”


라며 훽 돌아서 간다.

K가 돌아오자, ....그러더라? 일렀더니

안 그래도 큰 눈이 곧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면서

누가? 저놈이? 것도 여자한테?

이건 동양인이라 무시한 거네.

라며 거품을 문다.

여기까지였으면

어느 머리숱 없는 서양인 남자의 무례 정도로 한동안

“그랬지 뭐니?” 라며 여행담 정도로 우려먹다 잊혔을지도 모른다.

급기야 K가 피어싱 그녀를 불러 물었다.

네가 아무데나 앉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데 저 남자는 왜 우리에게 무례하게 구는 거냐.

나 지금 몹시 기분이 나쁘다.

당연히 미안하다, 로 시작할 줄 알았던 그녀는

생글거리는 미소를 유지한 채


“아무데나 앉으라고 한 거 맞다.

그런데 냅킨위치가 바뀌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사용 중인 거다.

저 남자의 자리에 너희가 앉은 거 맞다.“


그 바람에 그 맛있다는 조식, 건드려 보지도 못했다.

‘냅킨이... 옮겨져 있었나?“

‘세팅된 그대로였는데?’

‘아닌가?’

‘근데 그 남자는 고작 빵 두 조각에 베이컨 달걀 하나 가져오기를 뭐 그래 오래 걸렸다니?’

‘그래 그랬다 치자, 그렇다고 여자한테 그렇듯 불같이 화를 냈어야 했냐?’

‘이런 세상 매너 없는...!@#$%^&*^%$’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서 둥둥 떠다니는데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에휴, 내가 영어만 잘 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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