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 번 째 기록

오늘은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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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를 부릴 수 있는 최대 숫자가 100이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거, 우리 집에 백 개도 더 있거든?”

“나 거기 백 번도 더 가봤어.”

“너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 내가 전화를 백 번도 더 했다 야.” 등등


이 후, 어벤저스에서는 3000만큼 사랑한다고 했고

한 배터리 광고에서는 백만 스물하나 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그렇다보니 과장의 정도는 스멀스멀 백만으로 넘어갔는데

때 아닌 감염병 시대를 지나면서

‘여행 가본지 백만 년은 된 것 같아,’ 라든가

‘우리 얼굴 못 본지 오백만 년 쯤 되지 않았어?’ 라는 말이

꼭 허풍으로만 들리지 않기에 이르렀다.




“인간이 어떻게 내리 열두 시간을 잘 수가 있냐? 배고 안 고프나? 오줌도 안 마렵나?”


잠 많은 아이들에게 하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런데 어제 내가 그랬다.

아침부터 이유 없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오후에 마트에 갔다 와서 네 시 반쯤부터 잠이 들었다.

중간에 잠깐씩 깨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다시 잠이 들기를 되풀이하다가

창이 훤해서 눈을 떠보니 아침 일곱 시였다.

열두 시간에 더해 무려 열네 시간 반.

나 자신, 참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저녁도 못 챙겨준 K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놀라운 일은 또 있었다.

컴퓨터를 열어보니 며칠 전에 썼던 글이

밤사이에 조회 수가 10,000 회를 훌쩍 넘었다.

게다가 이틀 전에 올렸던 글이 백 번째 였던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작년 늦가을, 그냥 흘려보내기만 했던 시간들을 브런치에 쓰기 시작했었다.

기록을 하든 하지 않든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가겠지만

이상하게도 좋은 기억은 쉽게 지워지고

힘들고 부끄러웠던 기억만 점점 선명해져

나는 늘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살았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글은 예전에도 줄곧 썼지만

브런치에 글을 썼던 지난 6개월 동안은

어느 때보다 과감하고 용감했으며 솔직했었던 것 같다.

쓰고 보니 별 것 아닌 일이 전에는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게 벌써 백 번이 되었다니

나 자신, 기특하고 대견하다.

내친김에 요즘 대세대로 백만 번까지?

(하루에 하나씩만 쓴다고 해도 백만 일이면 내 나이가 대체 몇 살이야?)


뭐 아무튼

조회 수와 라이킷에 관심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고

특별할 것 없는 아줌마의 횡설수설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시는 그대들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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