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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Jun 05. 2022

우리 개가 좀 사나워서요

단추는 지금


올해 다섯 살 된 단추는

예전에는 산책 때마다 잔뜩 긴장을 하느라

지나가는 오토바이나 자전거, 킥보드에 예민했고

가끔은 갑자기 뛰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도 짖을 때가 있었다.

하루에 두 번 산책 시간이 일정해지고

동선도 익숙한 길을 반복해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인지

그래도 요즘은 한결 안정된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있다.

어지간해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무심한데

멀리라도 개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온 신경을 그리로 쏟는 듯

걸음은 느려지고 꼬리는 경직되고

눈빛은 초집중 상태가 된다.

서서히 상대와 가까워졌을 때

서로 탐색을 하고 난 후의 반응은 그야말로 예측을 할 수가 없다.

두세 걸음 정도 남았을 때 이미 흥분해서 와르릉 거리며 적의를 보이는가 하면

밀착해서 서로 냄새를 맡고는 이내 쿨하게 자리를 떠날 때도 있고

가끔은 한 쪽은 볼 일 끝났는데 다른 쪽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질척거릴 때도 있다. 

개에 대해서 날을 세우는 이유에 대해

식구들은 고기(K2가 키우는 웰시코기)와의 엇갈린 관계 때문일 거라 추측을 한다.


고기는 생후 4 개월쯤에 데려와서 다섯 살까지 내가 키우다가 딸이 데려갔다.

고기가 떠난 후 6개월 쯤 뒤 단추가 우리 집에 왔다.

처음에는 둘이 잘 노는 것처럼도 보였다.

지능이 높기로는 둘이 고만고만하지만

고기가 우직하면서도 살짝 셀피시한 타입이라면

단추는 직관적이면서 맹목적인 타입인 것 같다.

단추에게는 이 곳이 제 집이지만

고기에게는 대전집도 제 집이고 이 집도 제 집인 셈이다.

단추입장에서는 제 주인을 자기 주인인양 여기는 고기가 탐탁치않을 것이고

고기가 보기에는 자기 주인을 단추가 차지한 것이 영 마뜩치 않은 것도 당연하겠다.  

두 개님들이 사이좋게 의지하며 잘 지내길 바라는 주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만나기만 하면 사사건건 부딪히고 시샘하며 으르렁 거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게 단추의 개들 간의 사회성으로 굳어진 모양이었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는 그랬다.

개들 사이에는 우정이고 의리고 하는 개념은 없다고

개에게는 오로지 주인과의 관계만 있을 뿐이라고.

그런 상황이다 보니 나와 산책을 할 때에는 

될수록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에 비해

K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매번 산책을 다녀온 후에는 길에서 만났던 개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떤 사람이 단추 이름을 기억하더라느니

사람들이 단추보고 예쁘다고 하더라느니

원피스를 입혀서 나갔던 날에는 여자애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더라느니 등등.

굳이 사람들과 마주치기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했다.

도대체 그런 친화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며칠 전, K가 저녁 약속이 있던 날

평소 나가지 않던 시간에 단추를 데리고 산택을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낯이 익은 것 같은 노인이 타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단추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오늘은 어째 아저씨랑 안 가고.”


그 순간 퍼뜩 생각이 났다.

한 두 번인가 마주쳤는데 한 번은 산책길에 그 집개와 함께였고

한 번은 그 날처럼 엘리베이터에서 였다.

요즘 승강기는 겁나 빨라서, 타고 숨 한 번 쉬고 나면 1층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무지하게 더뎠다.

될수록 말을 하지 않으려고 어물쩍거리고 있는데 


“얘는 짖더라고. 아주 앙칼져. 우리 00는 사람한테는 안 짖는데.”


노인의 말을 배경소음처럼 생각하려고 애쓰는 순간에도

처음 만났던 산책길에서 내장을 토해낼 것처럼 짖어대던 그 집개가 떠올랐다.

그 분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얘는 짖더라고 물지는 않는데 짖어. 목소리도 엄청 커, 우리 애는 안 짖어.”


제발, 그만 하셨으면 하는 바람과 달리

노인이 다시 한 번 애가 짖는다는 말을 하는 동시에 1층에 도착한 승강기 문이 열렸고

“왕!!”

단추가 노인의 말처럼 앙칼지게 짖은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당황하기는 노인도 마찬가지 였을 텐데도


“저봐 저봐 앙칼지다니까 쯧쯧.”


하시던 말씀, 마저 하면서 냅다 달아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잠시 넋이 나가

공용출입구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다음 날, 그런 일이 있었더라는 얘기를 K에게 했다.

나도 가끔 만나면 그런다는 둥

그 집개도 만만치 않게 짖더라는 둥 

얘기를 하더니 


“그 할머니 그냥 얘기가 하고 싶었나보지.”


한다.


‘노인이라고 해서

얘기할 데가 없다고 해서

개도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자꾸 하면 안 되지.‘

라고 혼잣말을 하다가 

다음에 다시 만나면 해 줄 말을 생각해 냈다.


“저희 개가 좀 사나워서요. 자기 욕하면 물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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