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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Mar 05. 2024

4.5킬로그램의 존재감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환갑 여행을 작년 요맘 때부터 계획했었다.

나와 K에게는 이제 또 언제 있을지 모를 귀한 가족 여행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빼도박도 못할 의무로 여길지도 모를일이다. 

아무튼, 작년 여름이었어야 할 생일 여행 날짜가 급기야 이틀 뒤로 다가왔다.

너무 미리 세웠던 계획인데다 시기도 여러번 바뀌고 밀린 터라 크게 감흥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시시각각 날짜가 다가오자 저 밑바닥에 겹겹이 묻혀있던 설렘이라는 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행플래너를 채워가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가지고 있으나 어디 둔지 모르는 물건들 찾느라 집안을 뒤집어 놓고 등등, 을 하기 전에 우선 단추를 맡겨야 했다.

얼마전, 17년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냈던 올케 E가 고맙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E라면 물을 것도 따질 것도 없이 좋았다.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그는 사람도 좋아하고 동물도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친구도 많고 강아지들은 그와 무척 빨리 친해진다.

집에서 단추에게 식생활이란 오직 사료 한 가지 (심지어 훈련을 시킬 때조차 사료알갱이로 함) 가 있을 뿐 다른 종류의 간식이 없다. 

그 집에 가면 마음 약한 E는 빤히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을 차마 외면할 수 없다며 입에 넣었던 것까지 빼주는 불상사(?)가 생기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E는 말한다.


“이제 그만! 없어 없어. 더 먹으면 배아파.”


하지만, 단추가 누군가. 내가 모를 줄 아냐는 듯 촉촉한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제 까지 먹어본 적 없는 과일과 심지어 구운 고기조각까지 입에 들어오는데 어떻게 외숙모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일요일 점심 때 단추 짐을 싸가지고 동생네집에 갔다.

내려 놓자 마자 마치 나 이집 안다는 듯 한껏 해맑은 표정으로 온 집안을 구석구석 탐색을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동생, 올케, 조카까지 모두에게 공평하게 옮겨 다니며 뽀뽀를 하는 둥 부산스럽게 돌아다닌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TV를 보면서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제 집인양 소파위에 누워 잠까지 잔다.

그 집에 단추를 맡기는 것이 이 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 때는 K의 환갑을 명분으로 가족 여행을 갈 때였는데 단추가 한 살 쯤이었다. 

떨어지는 것이 처음이라서였는지 K와 내가 그 집을 나온 순간부터 낑낑거리며 불안한 듯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더니 급기야 먹은 것을 토했다고 했다.

우리가 걱정할까봐 올케는 그런 사실을 여행을 다녀온 후에야 말해주었다.

그런 전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걱정이 되기는 했다.

연습 삼아 몇 주 전에 데리고 갔다가 집에 가는 척 밖으로 나왔었다.

당연히 불안해할 줄 알았는데 출입문이 닫히자 내려 놓았더니 냅다 거실쪽으로 뛰어가더란다.

많이 컸네 싶어 안심이 되는 한 편 서운한 기분은 또 뭔일인지.

이번에는 정말로 떼어 두고 잘 부탁한다며 집으로 왔다.


   

자꾸 현관으로 나가보곤 하네요. 주인이 언제오나 하고. ㅎ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 짱짱짱. ㅎ 



이라고 했다.



월요일 아침, 내 방 화장실 물소리가 나면 방문을 살살 긁어대던 소리가 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나가면 몇십 년만에 만난 것처럼 세상 반갑게 뛰어오르던 뭔가가 없다.

K와 아침을 먹고 있으면 제 밥그릇 쪽을 향해 앉아서 타이머가 켜짐과 동시에 호다닥 달려가서 와작와작 밥을 먹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단추가 없으니 허전하네.”


언제나 그렇듯 K는 말이 없었다. T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일본어 수업을 마치고 병원까지 K와 같이 걸었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는 하는데 햇살은 눈이 부시면서도 

얼굴에 닿는 바람 느낌은 여전히 쌀쌀하게 느껴진다.


“아까 집에 들어가는데 뭔가 이상하더라?”

“......!!”


둘이 외출에서 집에 들어갈 때면 일부러 문앞에서 발소리를 죽이고 키패드를 재빠르게 누른다. 그런데 아무리 잽싸게 문을 열었어도 단추는 이미 중간문에 서서 온 몸으로 반가움인지 서운한 투정인지를 표현하느라 몸을 바들바들 떨고는 했다.

K의 말이 무슨 느낌인지 알기에 대답대신 그냥 웃었다. 

K는 출근을 하고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는데 출입문을 열었을 때 단추가 거기 없다.

오늘 아침, 단추 산책 할 시간쯤 K는 뭔가 할 일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어느 사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4.5킬로그램의 작은 생명이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대답할리 없는 질문을 자꾸 단추에게 하는 K에게 


“어이구, 단추 없으면 어떻게 살려나.”


라고 놀리던 말이 비단 K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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