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는 지금
단추 밥은 자동급식기에서 나온다.
어쩌다 K와 서로 미루다 보면 건너뛸 때도 있었고
살찔까 봐 딱 눈금 맞춰 주는 나에 비해
마음 약하고 특히나 먹을 것에 진심인 K가 줄 때는 양이 많아지기도 하다 보니 들쭉날쭉했다.
오전과 오후 일곱시가 가까워지면 단추는 제 쿠션위에 앉아
자세도 꼿꼿하게 급식기를 뚫어버릴 것처럼 쳐다본다.
그런데 역시나 자동이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어느 날엔가 외출했다가 K와 만나 저녁까지 먹고 들어왔다.
단추 밥 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럴 때 편하다고 변죽까지 맞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여섯시 반에서 일곱시 반 사이에 아침식사를 하는데
뭔가를 빠뜨린 것 같아 주위를 둘러봤다.
단추가 애처로운, 혹은 매우 억울한 표정으로 오도마니 앉아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개의 언어에 무감하지만 순간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시계바늘은 일곱시 오분에 가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료가 나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냉큼 급식기 뚜껑을 열어봤다.
텅 비어있다.
“뭐야, 너 굶은 거야? 설마 어제 저녁도?”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사료를 평소보다 듬뚝 담아 주고는
밥 먹는 개를 자꾸 쓰다듬었다.
“미안,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
또 어떤 날에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내게 와서 제법 무게있게 다리를 툭 친다.
일곱시였다. 급식기에 액정시계가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료는 이미 나와있을 터다.
밥은 안 먹고 왜 이러나 해서 봤더니
아침에 받은 배송보냉백이 급식기를 가로막고 있었다.
내 시선은 끌었고 다음에는 급식기 근처를 똥마려운, 아니 배가 많이 고픈 강아지처럼 종종걸음을 치며 왔다갔다 했다.
K가 또 말했다.
“말을 해야지 말을, 이거 치워달라고 말도 못해?”
단추의 표정이
‘내가 말을 할 줄 알면 치사하게 너네한테 밥을 얻어먹고 살겠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혼자 제주도에 갔다와서 그런걸까?
1박2일로 했던 친구들 모임에 정선까지 장거리 운전을 한 다음이라서일까. 몸이 안 좋은 건가?
그도저도 아니면 뭔가 대형 사고를 치고 전전긍긍하느라 그런건가?
나한테 뭔가 삐친것 같기도 한
요즘 K의 상태가 신경쓰인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거나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은 이미 익숙하지만
이즈음 느끼는 그 것은 분위기가 미세하게 다르다.
왜 그런지 물어도 봤고 대답하기 쉽게 객관식으로 예를 들어 주기도 했으나
정말 모르는 건지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영어 수업에서 외국인과 결혼하면 가장 어려운 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언어가 아닐까 라고 했더니 한국인 아내가 있는 강사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소통이란 게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며칠 째 자기만의 세상에 문을 닫고 있는 K가
“난 잘 모르겠는데?”
라고 말했다고 정말 모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영혼없는 그 말 때문에 더 헷갈릴 때가 있다.
어거지로 자백받듯 말을 하게 한다고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기다리는 것 뿐이다.
K가 자기 마음을 말할 수 있게 될 때를
혹은 말을 안해도 눈빛만 보고 그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될 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