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좋은 날 다 보내고

오늘은

by 이연숙



캠핑, 그게 뭐라고

결국은 짐 싸가지고 나가 밖에서 먹고 자는 것 아닌가.

포장만 열어 본 것,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캠핑용품을 방 한 쪽에 모아놓으니

어지간한 원룸 이삿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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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SUV에 그게 다 실릴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애초에 차박캠핑을 목적으로 용품을 구입했으므로

사실상 변변한 텐트도 없다.

돌아오는 주말 K의 생일을 명분으로 캠핑을 하자고 했었다.

아빠가 나서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만 말고

일단 엄마가 저질러 보라며, 결국 아빠는 벌여 놓으면 잘 하지 않느냐고 K2가 그랬다.

그래서 저질렀다.

K와 의논도 없이 가족 단톡방에 아빠 생일은 캠핑으로 하자고 올리고

캠핑어플에서 찾은 한 곳 사진을 첨부했다.

정말로 나는 말만 꺼냈을 뿐인데

아이들이 먹을거리를 준비하겠다고 하고

K는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여기저기 꿍쳐두었던 용품들을 꺼내

차에 실어본다며 몇 번에 걸쳐 지하주차장을 오르내렸다.

그러더니 학교에서 배운 매실청을 담가본다며 매실을 사러 가려는데

짐으로 꽉 찬 차를 가져 갈 수 없어 자전거로 매실 10킬로그램을 실어왔다.

설탕도 사야하고 병도 필요해서 마트에 가느라 결국은 실었던 짐을 다시 집으로 올렸다.

하나 둘 모아둔 용품들을 보고 있자니

드디어 내가 캠핑을 가는 구나 싶어 마음이 두근거렸다.

골프에 입문 하고 처음 필드에 나가면 머리올린다고 한다던데

나도 캠핑 머리를 올리게 된 것이다.

여행이란 실제 갔을 때보다 준비를 하는 동안 벌써 시작된 거라고 하지 않는가.

요 며칠 잠자리에 누우면 새벽 호숫가에서 갬성어린 주전자에 커피를 내릴 생각도 하고

화로에 불을 피워 요즘 사람들 다 한다는 불멍도 할 생각에 설레다가 잠이 들고는 한다.


그런데.

어제 여덟시 뉴스 말미에 일기예보를 보다가

기상캐스터의 예보에 일시정지가 됐다.


“다음 주는 장마가 시작되어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이어지겠습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발음까지 똑 부러진 리포터를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었다.

심지어 그녀는 생글거리는 미소를 함박 머금고 있었다.

일기예보 어플을 확인했다.

금.토.일 비올확률 90%

아 뭐 이런...@#$%^&!*&

그 많던 좋은 날 다 보내고

하필 장마의 한 가운데 바깥 잠을 자게 된 셈이다.


“어떡할까?”

“취소해야하나?”

“5일 전이면 70% 환불이라는데?”

“애들한테 물어볼까?”


늦잠을 자는지 한참 후에 온 K1의 답


- 우비입고 하는 거예요 원래.


라고 한다.


“하긴 고생한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긴 하지.”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여행은 진행하기로 했다.

우비도 챙기고 수건도 더 많이 챙기고

추울지 모르니 패딩, 담요, 숄도 준비해야겠다.

다시 설레기 시작한다.

캠핑 머리 올리는 날

비가 오니 해물파전이라도 부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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