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라서 그런 거였구나.

오늘은

by 이연숙


주말에 K2가 집에 놀러 왔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MBTI 얘기가 나왔다.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챙기고 싶은 세 가지를 말하라고 했을 때”

“응.”

“나는 강아지라고 먼저 말했는데 윤이 뭐랬는지 알아?”

“뭐랬어?”

“그런 가정을 왜 해? 라고 정색을 하더라고.”


라고 했다.

가정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하필 이혼이라서,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소재를 바꿔 화재가 났을 때, 라고 가정했다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왜 해? 라고 말할 것이 뻔하다고 했다.

그게 다 T라서 그런 거라고 덧붙였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T로 단결된 K와 윤의 공통점은 줄줄이 나왔다.

얘기를 듣고 보니 K와 나의 문제는 E와 I의 차이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F와 T라는 데 있었던 것 같다는 깨달음에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장에 탈이 나서 죽을 먹고 있는 내게, 저녁에는 곱창에 소주나 한 잔 할까? 라고 하거나

영화나 TV를 보면서 인물이나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옥의 티를 찾기 급급하다든가, 사실과 다른 부분을 굳이 찾아 지적한다든가 하던 행동 모두

T라서 그랬던 거였구나, 생각하니 K를 이해하기가 얼마간 쉬워진 것 같았다.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 가끔


“너 T야? 너 T지?”


라고 불쑥 튀어나오고는 하던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쉽게 말해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아예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K2가 말했다.


20230903T라서 그런 거였구나.jpg


주중 아침 일정이 K와 서로 어긋나면서 당분간 아침운동은 주말에나 할 수 있게 됐다.

나가려고 옷을 입으면서 날씨 어플을 켜보니 외부 온도가 18도 였다.

영영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가 그래도 아침저녁에는 한풀 꺾인 줄은 알았지만

급기야 20도를 밑 돌게 까지 된 것이다.

겉옷을 들고 문 밖까지 나갔다가 걷다보면 땀이 날 것 같아 다시 두고 아파트 출입문을 나섰다.

집 안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르게 공기가 한결 상큼했다.

공원 옆 나무들 사이로 내리 쪼이는 햇볕이 유난히 투명하게 느껴졌다.


“햇살 참 조오타~”


나도 모르게 저절로 터져 나온 감탄사에 옆에서 걷던 K의 말.


“뜨겁지.”

“.......”


잠시 정적, K얼굴 한 번 쳐다보고 햇볕 한 번 쳐다 본 후


“어, 그렇지, T라서 그런 거지.”


라고 말하고는 눈길은 허공에 둔 채 어색하게 웃었다.

아침 산책길은 상쾌했다.

비록,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아무렇게나 핀 들꽃 얘기도 하며

계절 이야기, 아이들 얘기를 하는 대신 행군하듯 빠른 속도로 과묵하게 걸음에만 집중하는

말 그대로 ‘운동’을 하는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아!

그래도 전설 같은 한 가지 얘기는 있다.

오래전에 K가 양재천을 걸어 출근을 하던 시절, 중간지점까지 나도 같이 걸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이맘때쯤이었지 싶다.

무성한 잡풀 사이에 있는, 강아지풀처럼 생겼는데 그 것 보다는 훨씬 큰 털북숭이 풀을 보면서

내가 이게 무슨 풀일까? 라고 물었고

언제나 그러하듯 무표정한 K가 낮은 소리로 진지하게


“개풀.”


이라고 했었다.

나는 정말 그 이름인 줄 알았고,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강아지풀보다 크니까 개풀이지.”

“!@#$%%^*&”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유머에 취한 듯 한껏 뿌듯해하던 K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요즘 천변에 지천인 그 풀을 보면서 K가 다시 개풀을 소환했고

나는 또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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