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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Nov 01. 2023

시월은 뭔가 허전하고 어수선하고


아직 어둠이 가시기도 전, 

눈이 떠져 시간을 확인하면 그 시간이 신기하게도 늘 다섯 시 오십 분 언저리다.

여섯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의미 없다.

샌디에이고에서 온 미국인 강사와 수강생 셋이서 하는 온라인 영어수업 시간에

강사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아침 알람을 맞춰 놓았냐고 그 소리를 듣고 깨는지 아니면 스누즈를 누르는지도 물었다. 

A는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고 했고 B는 스누즈를 세 번 쯤 누른 후에 겨우 일어난다고 했으며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고 말했다. 

강사는 나도 그렇다며 자신은 보통 잠이 쉽게 들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침대 밖으로 나가기 싫어 조금 더 버텨보자고 눈을 질끈 감아도

몸이 먼저 화장실 좀 가자고, 목이 마르다고, 배가 고프다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해서 결국은 

두 손 들고 침대를 빠져나온다. 

방문을 열자마자 스프링에 튕긴 것처럼 튀어와 매달리는 단추 한 번 안아주고

화분에 물을 주거나 빨래거리를 정리하고 나서 아침을 먹고

5~6km에 맞춘 동네 한 바퀴를 걷는 운동을 한다.

요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오늘이 십일월의 첫날 이라는 것도 어제가 그 유명한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생각해보면 시월은 구월에서 시작한 연휴가 이어져 꽤나 분주하게 시작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온 식구가 사촌 큰 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있자면 시고모님에 시큰아버님, 사촌 시누이들 동서 조카 등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될수록 명절 연휴에는 길에 나서지 않는다는 커다란 원칙을 세워놓고

하루는 시댁에 하루는 친정에 게다가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도 각각 다르다보니 근래 보기 드물게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시월이라는 말이 좋다.

좋은 기분이 솟구치지는 않았지만 나쁜 기분이 자주 들지는 않았다.

산책 때마다 피부에 스치는 적당한 선선함이 여행의 설렘을 기억해내게 했다.




TV쇼에서 잠수이별과 환승이별 중 그나마 어떤 쪽이 덜 화가 나는지 묻는 장면이 나왔다.


“잠수이별은 비겁한 거지, 아니 뭐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될 거 아냐.”


내게 물은 것도 아닌데 공연히 내가 흥분해서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불편한 상대에게서 오는 전화를 안 받은 적도 있었고 톡에 답을 하지 않는 짓을 나도 한 적이 있었다.

그걸 좋게 포장해서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대 놓고 불편하다는 말을 못하겠어서.’

라고 합리화했었다.


며칠 째 내 연락을 받지 않는 오래된 친구에게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했다.

오래 알고 지냈는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이유를 알면 편해질 것 같았다. 

오래 알고 지낸 의리(?)로 그녀에게서 받은 답을 보고 처음에는 

모든 게 선명해져서 정말로 편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평소, 약속시간에 늘 십오분에서 이십분씩 늦는 그가 어느 날에는 무려 한 시간을 늦은 적이 있었다.

그 날은 화가나기보다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약속시간을 앞두고 주로 뭘 하느냐고. 

어떻게 하면 집에서 출발해야할 시간에 다른 일을 도착할 시간까지 할 수 있냐고.

6~7년 전의 얘기를 나도 그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별의 원인이기도 한 그 일에 대해 그녀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십오 분, 어쩌면 삼십 분쯤 늦었으니 할 말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책망을 듣고만 있었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친구가 좋지 실수를 따지는 친구는 만날 필요가 없겠다고, 도 했다.

그 말을 들은 K는, 처음부터 같이 놀지 말아야 했어, 라고 말했고

다른 친구 M은, 너하고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며 네가 애초에 그를 끊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린가.

초록은 초록끼리만 놀아야 하고 파랑이 모이는 곳은 온통 파랑이어야 한다는 말일까?

초록이 모이는 곳에서 때로는 연두가 되기도 하고 필요하면 노랑이 될 수도 있거나

파란 물결이 일렁이는 곳에서 코발트블루가 되거나 네이비블루가 될 줄도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이라는 것을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알았다.


어쨌든 시월에 나는 또 하나의 친구를 영원히 잃었다.

그 친구의 톡에 답신으로, 혹여라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이라고 썼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아주 골이 많이 난 것 같다.



뭔가 분주하고 또 허전했던 시월이 끝났다.

십일월은 좀 더 선명하고 정돈된 날들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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