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수업을 듣기 시작한지 삼 년 됐다고 말하면 대부분 반응은 ‘같이 일본에 가도 걱정 없겠네.’ 라든가 ‘우와, 일본말 엄청 잘하겠네.’등 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뉴스에서 양복입은 일본인이 나와 연설하는 장면을 보면 띄엄띄엄 들어본 것 같은 단어가 있다고 느낄 뿐 순발력있게 문장 한 줄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읽기 연습을 하기위해 매달 일본어 저널을 부교재로 이용하지만 발음기호를 따라가기 급급할 뿐 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매번 새 학기 등록시기가 오면 ‘이걸 계속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결론 없는 고민을 되풀이 하고는 한다.
그래도 영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애초에 사회성이 부족한데다 새로 사람을 만나는 건 고사하고 알던 사람들도 멀어지는 와중에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만나다보니 지금은 제법 친해져서 아주 가끔 밥을 같이 먹기도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결국 일본어 배우러 갔다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친구만 생긴 셈이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 늘 앉던 자리를, 더 먼저 오는 신입에게 뺏기고는 자리유목민 신세였던 L이 내 앞 줄에 앉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언변이 좋다거나 강의 스킬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일본어 강사의 수업은 매번 성황을 이룬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올 때 저만치서 들리는 와글와글하는 소리는 마치 여고생들의 교실을 연상하게 한다.
L은 오녀 일남의 넷째이며 시댁 역시 오녀 일남의 자신은 외며느리라고 했다.
어떻게 시누이가 다섯이나 되는집 아들이 결혼할 생각을 하느냐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그는 그 집의 며느리가 됐고 남동생은 아직 결혼을 못했다고 말하며 깔깔 웃었다.
일년에 한 번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누이들과 여행을 다녀온다고도 했는데 이제 시어머니는 연로하셔서 내년부터는 시누이들하고만 가기로 했다고 한다.
L의 짝꿍과 내 짝 그리고 내가 동시에
“왜?”
라는 말이 미처 거를 새도 없이 튀어나왔다.
오히려 그가 ‘왜 왜?’ 하는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봤다.
시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시누이 스트레스는 전혀 없다고 했다.
두 짝꿍들과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엉뚱하게도 자매가 많은 그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상황, 오공주의 막내인 작은 올케나 L모두 자매가 많아서 좋겠다는 내 말에는
‘잘 맞으면.’ 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이모가 있으면 좋겠다, 는 K2만큼이나 내게도 언니가 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은 성인이 된 이후에 오히려 점점 커졌다.
요즘은 사 년 전 세상을 떠난 사촌언니 생각이 자주 난다.
열두 살 차이가 났으니 사실상 수다떨고 싸우고 그러면서 또 편 먹어주는 여느 자매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삼남매 중 가운데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같은 토끼띠라서인지 언니는 나를 무척 애틋하게 여겨 볼 때마다 늘 마음을 써주었다.
그에 비해 내가 언니에게 마음을 써 주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언니를 무척 아껴주는 남편을 만나기는 했지만 경제적인 궁핍은 언니의 꿈 건강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언니는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려고 애썼다. 통화를 할 때면 항상 밥해줄테니 오라고 했었다. 언니가 그렇게 많이 아픈 줄도 몰랐다. 언니가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더구나 돈이 없어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무심하게도 점점 가속도가 붙은 듯 매일 요일을 바꾸고 달력을 넘기고 해를 바꿨다.
언니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질 거라 생각했었다. 한동안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는 언니와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자주 있다.
언니가 예순살이 되던 해 지역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며 보고싶다고 오라고 했을 때
언니는 구내 식당에서 반찬을 듬뿍듬뿍 담아주며 일하시는 직원들에게 얘가 내 동생이라고 일일이 소개를 했었다. 그 때 진분홍색 니트 원피스에 롱부츠를 신고 있는 언니가 무척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 좀 자주 갈 걸, 하는 후회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저리다. 투석을 하느라 병원을 며칠 거리로 드나든다고 할 때, 그 때 찾아가서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줄걸.
새벽녘에 언니 꿈을 꾼 것 같다.
꿈에서도 꿈인 줄 알았는지 점점 흐려지는 언니 모습이 안타까워 나도모르게 마음이 새어나왔다.
“이젠, 못 보나?”
꿈에서는 생생했지만 깨고 나서는 풀풀 흩어지는 기억을 붙잡으려다보니 마음이 온통 축축하다.
눈꼬리를 따라 눈물자리가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