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선생식 농담

by 이연숙



알람은 여섯 시에 맞춰있지만 다섯시 언저리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여섯 시에 일어나서 꼭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알람을 설정할 필요는 없지만 스마트폰의 건강앱을 설정하면서 그렇게 정했을 뿐 별 의미는 없다.

그렇다고 전혀 이유가 없는 건 또 아니다.

퇴직을 한지 벌써 칠 년차이지만 K의 아침식사 루틴은 여전해서 우리는 아직 여섯시에서 여섯시 반 사이에 새벽밥(?)을 먹는다.


어느 날엔가는 지난밤에 건조기에 넣어둔 빨래가 생각나서 여섯시가 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더니 아침을 준비하던 K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과장되게 말했다.


“어쩐 일이야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어디 밭매러 가시나?”


농담이려니 하지만 별로 안 웃겼다.

어느 날에는, 일찍 나왔다고 뭐라 할까봐 일부러 늦게 나갔더니


“지금 시간이 멫시니? 으구 으이구”


한다.

또 다른 날에는 눈을 뜨고도 아침식사 준비될 때까지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휴대폰을 보고 있었더니 K가 방으로 들어와서


“잠이 깨고도 빈둥거리니? 깼으면 빨딱빨딱 일어나야지! ”


했다.

짧은 순간 데자뷰처럼 오래전 엄마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 같아 식은땀이 났다.

그 것이 K선생식 농담인줄은 알지만 짜증이 올라와 웃어줄 수가 없었다.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의 조건에, ‘남을 웃기면서 본인은 웃지 않을 것’이 있다면

K는 분명 무지하게 웃기는 사람이다.

오래전 K의 회사 사람들과 부부동반 모임이 있을 때면 몇 몇 아내들은 K를 무척 재미있는 사람으로 얘기하고는 했다.

청년이었던 K가 집에 놀러 왔을 때 아들하고 만화 주제가를 부르며 놀아주더니 그 아들이 지금도 가끔 매칸더 아저씨 얘기를 한다고 했다. 친구들 함잡이로 예비신부 집에 갔을 때는 신부 친구들이 진지하게 농담하는 그를 보고 배꼽을 잡았더라는 일화도 있었다.

스물아홉에 결혼을 하기전 까지 성당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싶었다.

문제는 농담을 할 때는 물론이고 표정변화가 없기로는 대부분 상황이 마찬가지라는데 있다.

그를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지점은 순간이었지만 늘 함께 있는 입장에서는 그게 그리 감동도 재미도 없으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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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모두 모여 육인 합체가 되었을 때 K는 매우 흡족해한다.

생닭을 사다가 삼계탕을 끓이기를 귀찮아하지 않으며 넉넉하지 않은 그릇 사정에도 불구하고 주주가 먹고 싶다는 마파두부를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들어 내기도 한다.

고수는 싫다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에서는 먹을만하네 라며 기꺼이 쌀국수 한그릇을 다 비우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소라도 잡을 기세다.

묻는 말에 대답 한 번 듣기가 수능 만점 맞기 보다 어려운 K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보다 말이 많아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두루 화제가 되기도 하고 종종 비장하게 유머 폭탄을 던지기도 한다.

아빠의 진지한 농담에 단호박 K2의 반응은


“어? 어어.” 혹은 “어이쿠!”


인데 주주는 아버님이 재미있다고 한다.

그 말에 힘을 얻었는지 이후로도 K는 종종 자기만의 방식으로 개그를 한다.


어제 저녁은 샐러드와 조기구이를 준비했다.

저녁을 먹을 무렵이면 TV에서 정보프로그램을 한다.

젊은 시절 열심히 직장에 다녔던 부부가 시골에 집을 짓고 농사를 하며 지낸다고 했다.

어떻게 만나게 됐냐는 제작자의 질문에 남편이 아내에게 한 눈에 반해 따라다녔다도 했다. 아내의 말에 남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허허 웃었다. 요즘은 어떤 재미로 사느냐고 PD가 물으니 남자는 사랑하는 가족과 하고싶었던 일을 하며 사는, 이 맛에 산다고 말했다.

그 말을 받아 K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맛에 살아?”


대체로 이런 류의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들은적이 없던 터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조기 맛에 살아.”


때마침 조기살을 한 입 먹으며 K가 말했다.

이 사람, 눈치, 공감 제로의 바보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농담 천재가 아닐까? 생각이 퍼뜩 스쳤지만 역시나 웃기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그가 유쾌하면 됐다.

웃고 안 웃고는 듣는사람 몫이고 농담을 하려는 마음만큼은 기분좋은 시도일테니 말이다.

우울해 죽는 것보다는 웃겨 죽는게 그래도 좀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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