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째 다른그림 찾는 중

by 이연숙



아침에 K가 단추와 산책을 나가려고 중문을 여니 출입문에 걸어놓았던 모자가 떨어져있었다.

이사를 들어올 때부터 붙어있던 별모양 고리 중 하나가 얼마전 떨어지고 남은 한 개였다.

출입문에 뭘 걸어놓는 것이 싫었지만 K는 자연스럽게 그 곳에 마스크를 걸어두었다.

원래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편하게 쓰길레 굳이 떼어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마스크 쓸 일이 없어지자 K는 그 곳에 교통카드를 걸어 놓고는 뿌듯해했다.

이제 카드 두고 나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겠다며. (그럴 리가, 그는 그 후로도 자주 카드를 깜박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전 한 개가 떨어지자 어쩐일인지 한동안은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 내가 며칠 전 모자를 쓰고 나가려다 더워서 급하게 벗어 걸어놓았던 것이다.


“모자가 무거웠나? 차라리 잘 됐어 깨끗하고 좋네.”

“이걸 걸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손에 잡는 리드줄이 불편하다고 해서 며칠 전 사준 핸즈프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안 돼! 이제 아무 것도 붙이지 마. 깨끗하니 좋구만.”


쓰던 것보다 훨씬 길어진 리드줄이 주렁주렁 달려있을 상상을 하고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벽을 쳤다.

그랬더니 그가 무슨 말인가 한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 그랬어?”

“사람이 쓰기 편해야지.”


K와 나는 계획형의 J만 같고 MBTI가 완전히 다르다.

그 중 물건을 수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상황이다보니 가끔 아슬아슬 할 때가 있다.

될수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차곡차곡 정리해두는 편인 나와는 달리 K는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필요한 물건들은 나열한다.

굳이 장단점을 비교하자면 내 방식은 깨끗한 반면 K의 방식은 늘 주변이 어수선하다.

잘 정리해 두었지만 정리해 둔 사실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막상 필요할 때 못찾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내 방식에 비해, 뭔가 필요할 때 K에게 부탁하면 '거봐 내말이 맞지?' 하는 듯 거만한 표정으로 건네준다.

내가 챙겨둔 두통약을 찾다 찾다 못 찾아서 K에게 달라고 하다가 이제는 아예 내 건 찾을 생각도 않하고 그냥 달라고 한다. 장염약, 파스, 소화제 등 주로 내가 쓰는 물건들을 K에게 보관하라고 하니 편하다.

그 뿐 아니다. 붙이는 행거, 못으로 박는 행거, 일회용 밴드, 연고, 여행용멀티탭, 면봉, 건전지, 양면 테입, 랜턴 등 뭐든 말만하면 다 나온다.

이사할 때마다 상패모음 상자를 이제 버리자고 하면 낡은 상패를 하나씩 들어올리며

이건 사단장 표장, 이건 성적 우수 표장, 이건 직원들이 준 감사패 등등 해가며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며 결국은 수납선반 어디쯤 한 자리를 차지하고야 만다.

그의 책상 주변을 보면 효자손부터 시작해서 손톱깎이 면봉 각종 펜 플라스틱 자 스테플러등 문구류에서부터 해마다 모은 건강검진 기록지 파일 등 나로서는 쓰임새를 알 수 없는 각종 파일들, 거기에 내가 버리려고 내 놓았던 책들까지 빽빽하다.

그가 주방일에 참여 하면서 싱크대 위 풍경도 달라졌다.

테트리스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나는 가능한 싱크대 상부장 안이나 혹은 다용도실 선반 위 등에 밀폐용기들을 틈이 없으면 만들어서 구겨 넣는데 K는 그 것들이 비는대로 차곡차곡 싱크대 테이블 위에 쌓아놓는다. 다 쓰고 나온 양념병에서부터 크게는 김치통까지 쌓아놓느라 어떤때는 도마 놓을 공간도 부족해지기도 한다.


잘 숨기는 수납을 하는 나

잘 보이는 수납을 하는 그

뚜껑을 닫지 않는 그

열려있는 뚜껑을 보면 뚜껑이 열리는 나

여행을 결심하기가 세상 어려운 그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여행을 꿈꾸는 나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생기가 도는 그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탈진하는 나

지나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는 그

지난 시간에 붙잡혀 사는 나

현관문에 뭘 붙이는게 싫은 나

작은 걸이가 떨어졌으니 더 크고 튼튼한 고리를 달고 싶은 그


20250826 37년째 다른 그림 찾기.jpg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툭툭 불거져 나오는 K의 습성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37년 째 서로 다른 그림을 찾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다 찾지 못할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찾는 이 순간에도 없던 것이 새로 생기기도 하고 있던 습성이 없어지거나 묘하게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도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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