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가 청소를 못하면

by 이연숙



손목 통증으로 병원에 갔을 때 물리치료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택시를 탔을 때나 미용실 등 같은 자세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두가지 상황이 있다.

스몰토크를 시도하거나 침묵을 유지하거나.

내 경우에 주도권은 전적으로 상대에게 있으므로, 말을 시키면 최대한 성의껏 대답을 하고 말을 걸지 않으면 조심스레 안도의 한 숨을 쉰다. 내가 먼저 말을 걸거나 심지어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은 하지 않는다.

삼십대 쯤으로 보이는 치료사가 손목을 마사지하며 물었다.


“손을 많이 쓰시나봐요. 손가락 마디도 조금 부었네요.”

“아, 네. 뭐 많이... 랄 건 없고 누구나 그 정도는 쓰겠죠.”

“치료를 받으시더라도 좀 덜 써야 나을텐데.”

“그래서 로봇청소기를 샀어요. 남편 손이 아플 때는 식기세척기를 샀거든요.”


얘기는 그만하고 좀 쉬고 싶다는 의미로 묻지도 않는 말까지 한 방에 했는데 그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한바탕 웃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나름대로의 서비스정신일테니 그가 민망하지 않도록 성심성의껏 맞장구를 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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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기분이었다.

청소기를 작동시켜놓고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 거실이 이렇게 넓었나 싶었다.

물걸레 청소까지 말끔히 끝내 놓은 집은 우렁각시가 왔다 갔다 간 것 같았다.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후로 스틱형 청소기는 뒷방 신세가 되었고 ‘롸키’를 작동 시키는 날에는 K도 바닥에 있던 물건들을 올려놓는데 적극적이다.

그 것이 지난 3월의 이야기다.

청소기 덕분인지, 더 이상 정형외과에 가지 않게 됐고 손목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K는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은지 일 년이 되기도 전에 다시 손가락이 아프다며 물리치료기를 사서 매일 파라핀에 손을 담근다. 설거지 때문이었다면 더 이상은 방법이 없다.

배달음식을 먹거나 일회용 그릇을 사용하는 수밖에.

나은 줄 알았던 손목 통증이 다시 시작되고 아침마다 엄지손가락이 접히지 않는가 싶더니 급기야 통증까지 생겼다. 병원에 가봤자 소염진통제를 처방해주거나 물리치료나 하고, 그래도 많이 아프면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라고 할 것이 뻔하니 구태여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태로 계속 살아야 한다 생각하니 통증보다 기분이 우울해졌다.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조카의사샘을 찾아갔다. 적어도 의미없는 치료에 시간과 돈을 쓰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궁색한 이유를 붙였다.

일흔살까지 고모 볼에 뽀뽀를 해 줄 거라던 조카샘의 진단은, 건초염이라며 K와 내게 약을 두 달치 처방해주고 고모에게는 특별히(?) 아픈 주사까지 손수 놓아주고는 잘 참았다며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조카샘의 애정어린 진료 덕분인지 통증은 차츰 나아졌다.


어쩌다보니 대부분 주말에 청소를 하게 됐다.

책상을 밀고 의자를 올리다보니 초등학교 때 청소시간이 떠올랐다. 화분을 화장실로 옮기고 식탁의자를 올리거나 청소구역을 피해 옮겨두고 청소기가 지나갈 자리를 확보하느라 소파를 조금 당기는 등 하다보니 사전작업이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은 켜 놓고 외출을 하지 않고 거실 소파위에 앉아서 롸키가 돌아다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거실 안방 주방 복도 방3 방2 동선으로 설정을 해 놓았는데 이 것이 어느 지점에선가는 걸레를 빨아야 한다며 집으로 돌아간다. 기껏해야 호떡 두 장 크기만한 걸레를 약 오백씨씨 정도 되는 물에 세척을 해봐야 얼마나 깨끗하게 빨겠노 싶었다.

내 딴에는 집안의 벽을 따라 이어지는 최적의 동선으로 설정했다고 했는데 가는 공간마다에서 걸레를 빤다고 돌아오니 잘 짜인 동선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내 눈에 딱 걸린 장면이 있었다.

거실 한 복판에 실오라기 같은 것이 떨어져있었는데 왼쪽에서 오던 녀석이 지나가면서 가져가려니 했으나 그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오른쪽으로 갈 때는 치워가겠지 했고 다시 지나간자리에 먼지가 없길레 ‘그럼 그렇지!’ 했는데 저만큼 앞 쪽에다 토해놓았다.

슬슬 부아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청소가 끝난 후까지 실오라기였던 그 것은 똘똘뭉친 먼지 덩어리가 되어 거실 바닥에 붙어 있었다.

K가 집에 왔을 때 잔뜩 짜증이 섞인 소리로 말했다.


“아니, 청소기가 청소를 못하면 저걸 어디다 쓰냐?”


생각해보니, 살면서 책상을 밀 일이 있겠으며 의자 등 가구를 옮겨 놓을 일이 얼마나 있겠나.

스물네 평 아파트의 거실이 커 보였던 이유는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잘해서가 아니라 붙박이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구들을 옮겼기 때문이었다.

청소기가 청소는 못했어도 사람을 움직이는데는 성공한 셈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을 시켜 가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게 맞겠다.

나이가 들수록 붙박이처럼 지내는 일이 점점 편해진다.

청소 못하는 청소기를 보면서 나도 누군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하다가 실소가 나왔다.


그나저나, 쟤를 어디다 쓰나?

당근에 팔아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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