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지원하는 원어민 영어교실이 폐지되면서 소그룹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 한 것이 삼 년 전 일이다.
팬데믹 상황이 종식된 무렵이었는데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나는 일단 집밖으로 나갈 일을 만드느라 목적도 없이 일본어 수업을 신청했었다.
그러므로 월 목요일에는 교육원에 가고 수요일에는 집에서 줌으로 영어수업을 했다.
수 금요일 저녁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 진행하는 요가수업에 참여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뭐 그냥 하는 일 없이 매일 똑같지.’라고 말했었다.
즉, 똑같은 일상이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스타벅스 플래너에 쓰는 일기장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면은 한 페이지인데 어째 더 많은 일이 있을 것 같은 토, 일요일은 한 면에 나누어 놓았다. 일주일이 칠일이라 어쩔수 없었겠다면서 금요일 면이 펼쳐지면 또 한 주가 갔구나를 인식함과 동시에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자각을 하게된다.
가끔 월요일과 목요일을 혼돈하는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무 일정도 없는 화요일이나 금요일이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느긋해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구월부터 그 루틴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일본어 관련 수업이 하나 늘어난 거다. 그간 일본어가 늘었거나 재미있어졌다거나 혹은 꼭 해야만 하는 목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굳이 어거지로 이유를 갖다 붙이자면, 친구따라 강남 간 셈이다.
초급반 동기였던 A가, 최근 의도와 상관없이 일상이 변할 수도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느낀 이 후 뭐가 됐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결심을 단단히 했다고 했다.
그러느라 나보다 백 배는 더 열정적이던 교육원 일본어 수업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해야해서 당분간 그만 둘 거라고 했다. 대신 수련관에서 하는 원어민 여행일본어 수업에 등록을 할 테니 나보고 같이 하자고 했다. 거기에 B는 이미 포섭(?)을 끝냈는지 둘이 협공으로 신청을 권유했다. 일찍이 보험이며 종교, 심지어 모델하우스 판촉까지, 걸리는 족족 영업을 당하던 터라 마음 대차게 먹고 사람들 모이는 곳을 무조건 피하고 보는 중이었다. 설득당할 기회 자체를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 건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그 수업에 가면 A를 만날 수 있고, 삼 년을 한 결같이 수업에 갔어도 별반 발전이 없는 상황이라 어쩌면 다른 수업에 참여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어느덧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하여 수요일 오후에 일정 하나가 늘었고 지난 주 첫 수업에 갔다.
일본인이라는 남자 강사는 줄곧 일본말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수강자들에게 어려울 것 같은 부분은 한국어로 말했는데 그 발음이 어지간한 한국인의 그것보다 명확해서 놀랐다.
어쨌든 수업을 듣기로 한 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B와 가까워지기 전에는 C가 있었다. A와 C 셋이 가끔 수업후 점심을 먹으며 수업의 고충을 얘기하고 때려친다는 나를 만류하고 그럼에도 이 공부를 계속 해야한다는 결의(?)를 다지며 각자 다음시간 예습을 하러 집으로 가고는 했었다. 우리 우정 영원하자는 약속을 한 적은 없었지만 C가 일을 하게 돼서 수업에 나오지 않게 되고 비슷한 시기에 A조차 집안 일 때문에 잠시 쉰다고 했을 때만해도 그게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난 학기에 약속대로 A는 돌아왔지만 C는 간간이 오던 연락이 드물어지다 그나마도 끊겼다.
A조차 다른 수업을 병행하고 있어서 일본어는 월요일에만 출석할 거라고 하더니 급기야 새학기에는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의연하려고 마음을 자꾸 추스렸다.
‘사람 관계라는게 다 그런거지. 만남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 끝이 있게마련인 거지.
왜 이래? 아마츄어처럼.’
미련이 많은 나만 추스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정이 많기로는 A가 한 수 위였나보다.
처음에는 영어를 같이 하자고 했다가 내가 뜨악해하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여행일본어 강좌를 찾아내 함께 듣자고 했다. 명색이 일본어 회화반이면서 정작 회화는 하지 않고 주구장창 한자공부만 삼 년 가까이 했으니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수업이겠다 싶어 솔깃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첫 수업을 마치고 나서 수련관 앞 벤치에 셋이 나란히 앉았다.
새 강사 얘기, 교육원 선생님 이야기 등 이런저런 수다를 떠느라 집에 가는 것도 잊었다.
그 느낌이 좋았다.
정작 학교에 다닐 때에는 수업 끝나기 무섭게 저녁을 하러 집에 가기 바빴으니 친구들하고 학교앞 분식집에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거나 운동장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없다.
B는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자기보다 나이가 아래일 거라 생각했었다고 했다.
나이를 안 후에 놀랐지만 그 이후에도 그 나이가 느껴지지 않아 자꾸 말을 놓게 된다고 했다.
그 말이 특별히 좋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이 사람들 역시 언제, 어떤 이유로든 인연이 다 하는 날이 있겠지만
지금은, 공부보다 사람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