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상관하지 말아야겠어

by 이연숙


두 개 단지로 나뉘어있는 아파트를 바깥쪽으로 크게 돌면 삼 킬로미터, 왕복 이차선 도로를 하나 건너 두 동짜리 큰 건물을 돌아오면 대충 오킬로미터가 된다.

그 날은 저녁 산책으로 아파트 단지만 돌아오기로 했다.

남쪽 입구를 지나 좌측 길로 들어 중간지점 쯤 갔는데 한 여자가 강아지를 안은 채 우리에게 아파트쪽 화단을 보라고 가리킨다. 여자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보니 전에도 두어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는 너구리 두 마리가 놀고 있었다.

‘그게 왜요?’ 하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저기요, 한 녀석 목에 뭔가 걸려있는 것 같아서요.”


자세히 보니 플라스틱 홈통 같은 것이 목걸이처럼 걸려있었는데 조이거나 날카롭지는 않아 당장 위험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싶어 멀뚱히 바라보고 있으니 여자가 또 말했다.


“저렇게 두면 위험할 것 같아서요. 구조신고를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럼 자기가 하면 되지 왜?’ 마음의 소리가 자꾸 삐딱해지다보니 겉으로 드러날까 싶어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런데 옆에 서있던 K는 벌써 119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하이고... 또.’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오래전, 스마트폰은 물론 휴대폰도 없던 시절, 미래라고 물을 사 먹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냐며 코웃음치던 시절에 K의 형수님은 말씀하셨다.

K의 형이자 형수님의 남편, 내게는 시아주버니가 되는 분의 독특한 술버릇에 대해서.

술을 마신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의 고장난 신호등을 붙잡고 씨름을 한다고 했다.

신호등이 고장났다고 파출소에 신고를 했는데 아직도 고치지 않았다며 화를 내며 경찰과 입씨름을 하기도 했단다. 그 것이 경찰 소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신고정신이 투철한 시숙은 동네 가로등이 나갔거나 공중전화가 고장나 있거나 등 뭔가 불편을 초래하는 상황을 보면 참지 않았다고 한다.

형만큼은 아니지만 K도 역시 같은 피가 흐른다는 걸 확인한 경우도 왕왕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지하철 엘리베이터 옆 쓰레기통에 불이 나 있는 것을 보고 K는 운전중이었음에도 차를 세워놓고 신고를 했다. 남일에 끼어들기 싫은 나는 ‘본 사람이 많을 텐데 누군가 이미 신고했겠구만.’ 라고 생각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집 앞 고장난 신호등이 며칠 째 방치된 것을 보고는 시청으로 지구대로 날마다 전화를 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김씨네 형제는 어디 안 가는구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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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에서는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 그 쪽 소관은 아니라며 120으로 하라고 했단다.

120은 지역 담당자가 퇴근했으니 시청으로, 시청 당직자는 담당자가 퇴근했다며 다시 119로 하라고 하더란다.

길가다 도움이 필요한 동물을 보고 선의의 시민이 신고를 하면 즉각 구조대가 나타나 포획틀을 설치하고 동물을 놀라지 않게 안전하게 구조하는 TV동물농장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삼십 분이 지났다. 예의 전화돌리기가 짜증스러운 듯 K의 분노게이지가 슬슬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최초 발견해서 떠넘긴 여자는 훈훈한 결말을 기대하는 양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개를 안은채 그 자리를 서성거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신기하다며 제각각 사진을 찍고는 제 갈길을 갔다.

산책하러 나왔다가 꼼짝없이 진상 민원인이 되어 전화를 돌릴 때마다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또또 하는 K의 얼굴이 해쓱해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부부인지 모녀인지 모를 너구리들은 어느 새 자리를 이동했는지 사라졌다. 여자도 갔다.

다음날 오후 산책을 하던 중 시청에서 전화가 왔는데 요즘 너구리 관련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고, 내용은 알고 있으니 찾게 되면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찜찜한 결론이 났다.

커피를 사 들고 집으로 오면서 K가 혼자 소리처럼 말했다.


“다음엔 상관하지 말아야겠어.”


듣던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러게 왜 끼어들었냐.’ 는 말을 소리내어 하지는 않았다.

한 편으로는, 그래도 이런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어야 사회가 조금 더 살기 좋아지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조금 서운한 기분도 들었다.

아주버님은 지금도 신고정신이 투철하실까?

K는

정말로 다시는 남 일에 상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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