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버리지를 몬하는 거니.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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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정리할 때마다

‘이런 게 있었어?’

‘이게 여기 있었네?’

‘요만했던 애들이 벌써 어른이 됐네.’

등등 옛 추억에 잠겨 일은 뒷전이고

때 아닌 추억 팔이를 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는 사람이 나 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자기 엄마가 이삿짐 정리하면서

옛날 사진들을 자꾸 가족 단톡방에 올린다는 사연을 들으면서

뜨끔했던 적이 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짐을 싸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힘들어


이제는 아무것도 사지 말아야지. 있는 거 쓰다가 홀가분하게 가야지.



라는 다짐을 백 번쯤 한 것 같다.

최근의 이사는 짐 줄이기의 절정이었다.

정리 전문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일 년 동안 한 번도 입은 적 없는 옷은 버렸고

소용은 없지만 추억이 묻어있어 끼고 살던 물건들도 냉정하게 손절.

덤으로 받았던 그릇이며 자질구레한 소품들도 과감하게 처분했다.

공짜가 공짜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이왕이면 뭐라도 하나 붙여 주는 것을 좋아하던 지난날의 나를 떠나보낸 셈이다.


미니멀 라이프가 그리 간단하지 않더라구.



계절이 바뀌면서

배추와 연탄을 들여놓는 대신

온수매트와 가습기를 꺼내고

선풍기와 제습기, 공기청정기를 치우는 것으로 월동준비를 했다.

선풍기는 침대에 넣었지만 제습기와 청정기를 둘 곳이 없다고 했더니 아이가 했던 말이다.

이사 할 때 쓰던 침대 프레임을 수납침대 프레임으로 바꿨다.

한 쪽 면은 서랍이 세 개씩 두 단, 즉 여섯 개이고

안 쪽은 커다란 벙커가 두 개 있다.

그 곳에 여름내 겨울 이불을 넣어두었고

지금은 선풍기와 기타 사용하지는 않지만 버릴 수는 없는 물건들을 넣었다.

다른 한 칸에는

아이들 유치원 때 그림과 일기 상장 등

어느 집에나 있는 그 것들이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그 말을 했더니 둘이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엄마! 요즘은 그건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하고 다 버린대.



그래야겠다고 말을 하고도 아직 그러지 못했다.


청소를 하다가 K의 방 문 앞에

아무리 봐도 제 자리는 아닌 것 같은 자잘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까만 주머니에 담긴 것은 판초우의였고

다른 하나는 방문 옆에 걸어두었던 LED시계였다.

판초우의로 말할 것 같으면

이천 년 대 초반, 직장 산우회 따라 한라산 겨울 등반을 준비하면서 커플로 샀던 것 같고

시계는 내가 새벽에 시간 확인하려고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밝아서 넣어둔 것을

K가 방에 걸어 두었었다.

최근에 깊은 잠을 못 잔다는 말에

방이 너무 밝아 그런 거 아닐까 싶어 내가 떼자고 했었다.

우의는 너무 오래 돼서 방수 필름이 삭아 제 기능을 못하게 됐고

시계의 기능은 문제없지만 용도와 맞지 않아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됐다.


그런데 왜!

버리지를 몬하는 거니.

버릴 때가 되면 버려야지

보낼 때가 되면 보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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