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흘러가는 것은 없다.

비오 오고 꽃도 오고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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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하러 가려고 했다.

예전 살던 동네에 가서

친구도 보고 머리도 하려고 했다.

한 달이 지나면 나이 숫자의 앞자리가 바뀐다며

학년이 올라가기 전 마지막 모습을 봐야하지 않겠느냐며

마음속으로 억지를 부려도 봤다.

대중교통으로 적어도 세 번을 갈아타며

친구를 만나러 가야하는 이유는 좀 번지르르 해야 할 것 같았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두 시간 반을 갔다가

점심 먹고 차 마시고 다시 두 시간 반을 돌아오는 것 보다는

다니던 미용실에 들러 머리도 하고 동네도 돌아본다면

그 시간들이 그리 길게 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억수로 온다.

기온도 낮고 비바람까지 칠거라고 한다.

가야할 이유가 두 가지라면

가지 말아야 할 이유 수백 가지가 툭 치면 줄줄 튀어 나올 것 같다.

못 가겠다는 톡을 하면서

너를 만나기 위해

비바람을 뚫고 두 시간 반을 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인생이... 뭐 그리 쉽게 흘러가겠어?”


거창하게 인생까지 들먹였다.



오래 고민을 하던 끝이라서 그런가

오늘 오전 시간이 덤으로 생긴 기분이다.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이 인터넷을 서성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며칠 전에 부재중 전화가 있었던 B다.

여행 사진 그림 등 관심사가 비슷한 데 비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는 늘 마음이 편치 않은

나보다 여섯 살이 많은 친구다.

고민 끝에 관심사보다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어보지만

전달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

비겁하지만 가장 소심한 방법으로

전화를 받지 않았고 톡에 답하지 않았다.

톡에 답을 하지 않으니 문자로 왔다.

여행 중이냐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 쉬고 있다고 했다.

허리통증과 위염 증상 때문에 고생하고 있으니

딱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영화에서 루스는 어쩔 수 없이 살인죄 누명을 자초해서 20년을 복역하고 나왔다.

그녀의 바람은 오직 동생을 만나는 것뿐이었는데

어렵게 마음을 열었던 남자의 배신

주변의 편견

피해자 가족의 복수심

동생을 입양한 양부모의 만남 거부

어느 것 하나 그녀의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피해자의 아들이 복수를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녀가 말했다.

세상에 그냥 흘러가는 것은 없다고.


내 마음도 그렇다.

아무것도 저절로 흘러가는 것은 없다.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친구에게 오라고 말하고

만나기 불편한 사람에게는

불편하니 이제 연락하지 말자고 말해야 한다.


..


꽃이 왔다.

K2가 구독해 준, 2주에 한 번씩 배달되는 꽃이다.

2주가 지난 줄도 몰랐다.

오늘따라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으로 구성되어있다.

어수선했던 마음이 꽃처럼 하얗게 맑아지는 기분이다.

꽃을 받는 날은 언제나 감동이지만

어떤 날은 더 특별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가끔은 그냥 흘러가는 것도 있다.

(K2가 구독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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