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사춘기니?

단추는 지금

by 이연숙



이제는 거의 루틴처럼 굳어진 아침 산책 코스는 약 4km, 6천 걸음쯤이다.

아파트 공동 출입문을 나서면

굳이 내가 방향을 잡지 않아도

단추가 먼저 경사로로 바쁘게 걸어간다.

그 다음에 오른 쪽으로 두 번 꺾고

왼쪽으로 난 쪽문까지 가는 중간 어디쯤에서 한 번 배변을 한다.

냄새를 맡느라 코를 땅에 박고 걷는 와중에도

안양천을 건너는 다리에서 정확히 우회전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을 한 후에는 약 10m쯤 이어지는 잔디밭을

세상 경쾌한 걸음으로 통통거리며 뛰듯이 걷는다.

신기한 건, 다 돌고 집근처에 거의 왔을 때이다,

직진으로 오면 될 것을 굳이

우리 동과 뒷동 사이 길로 들어간다.

그 곳에 쓰레기장이 있어서 배변 봉투를 버리려고 가곤 했는데

그 것을 집에 가는 길로 인식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줄을 당겨 방향을 잡아주지 않아도

제 집으로 들어가는 경사로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향을 튼다.

K와 그런 얘기를 나누며 신통하다 대견하다 하는 모양이 어째

아이들 키울 때 남들도 다 하는 발달과정을 보면서

우리 아이 천재인 거 아니 나며 뿌듯해하던 때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단추에게는 하루 중 유일하게 세상과 만나는 시간인 줄을 알기 때문에

날이 추워졌어도 산책을 생략할 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단추뿐 아니라

내게 더 귀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우리 단추가 달라졌다.

하루는, 늘 다니던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한사코 옆길로 가겠다고 버틴다.

그 길에는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라 꽤나 당황했다.

방향을 잡을 때 하듯 리드줄을 튕기면서 당겨보았다.

이 녀석, 몸을 뒤로 젖히고 두 앞발을 길게 뻗으면서 완강하다.

그 길로 가면 안 될 것도 없지만

녀석의 고집에 그냥 응해주면 안 될 것 같아 나도 서서 같이 버텼다.

강아지 눈빛에도 강한 표정이 있다는 것을 그 때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나 거기로 가기 싫은데?’

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눈빛만 째려보듯 나를 올려다봤다.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최후의 수단으로

리드줄을 땅에 놓아버리고 단호하게 돌아서서 나 혼자 갔다.

몇 걸음마다 돌아봤지만 녀석은 처음 그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로수가 그리 굵지 않아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화단 하나를 다 지나 온 후에

낮은 나무 뒤로 숨어 (나만 안보이면 숨은 거라고 생각) 다시 뒤를 돌아다봤다.

여전히 그대로다.

푸들 고집이 센 건지

단씨 고집이 센 건지 모르지만 결국 내가 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 때까지도 녀석은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앞발을 뻗은 그 자세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리드줄을 다시 쥐었다.

녀석은 생각 외로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원래 다니던 길로 예의 경쾌한 발걸음으로 뛰어갔다.

다음 날엔 비가 왔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

강아지는 비가와도 산책은 좋아한다고 했다.

여름에 사 두었던 우의를 입혀 1층으로 내려갔다.

공동출입문을 나가 경사로에 내려 놨는데

어쩐 일인지 녀석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왜? 안 가? 집에 갈래?”


꼼짝도 안 하고 빤히 올려다보던 녀석이

‘집에 갈래?’ 소리에 냉큼 돌아서더니 먼저 출입문 앞에 선다.

다음 날에도 비가 왔다.

우의가 불편해서 그런가 싶어 이번에는 그냥 내려갔다.

그런데 마찬가지였다.

비를 맞기도 전인데 비 냄새를 맡은 건지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눈빛이

‘아! 비 오는 데 구찮게 어딜 간다고 그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전,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던 날이었다.

패딩 조끼에 목도리까지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경사로 앞으로 가기도 전에 또 다시 얼음.


“아 왜! 오늘은 또 너무 추워서?”


뭐 이런 개님이 다 있나 싶었다.

가만, 올 해 다섯 살이 되었으니 혹시...


“너 사춘기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미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