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는 지금
샌디에이고에 살 때
아파트 네 개 동의 한 가운데에 정사각형의 잔디밭이 있었다.
단순한 조경의 일부려니 했었는데
며칠 지내면서 보니 그 곳은 개 배변장소였다.
한 쪽에 쓰레기통이 있고 그 옆에는 수거용 비닐봉투가 비치되어있었다.
방이 두 개이거나 한 개인 소형평수 아파트였는데도
조랑말처럼 큰 개를 키우는 집도 있었고
구름처럼 흰 털을 가진 사모예드는 하루에 두 번이나 나왔다.
잠자다가 나온 모양인 갈색머리 여자는
머리는 헝클어졌고 짧은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 사이로 허리 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개가 똥 마렵다고 주인을 깨운 건지 문을 긁어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스스한 모양새로
오로지 개의 실외 배변을 위해 나오는 것 같았다.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는
배변은 밖에서만 한다는 말만으로도
그 곳에서의 상황들이 이해가 됐다.
강아지를 처음 데려왔을 때 배변교육부터 시작했다.
실내 배변이 당연한 줄로 알았다.
패드에 오줌을 조금 묻혀 냄새로 화장실을 인식하게 하거나
온 집안에 패드를 깔아놓고
가장 자주 싸는 자리 쪽으로 영역을 점점 좁혀가기도 한다.
하지만 강아지도 아기라서인지 주인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처음부터 배변은 실외에서만 하는 교육을 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도 못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자다 나온 차림이라 속살이 비어져 나오든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아 있든
볼 일이 급하다는 반려견을 위해 일단 집 밖으로 나와야 하는 거다.
단추는 실외에서도 하지만 급하면 배변판에도 배변을 한다.
늦은감은 있지만 실외 배변 습관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간다.
한 시간 남짓 산책을 하는 동안 보통은 두 번 보는데
때로는 세 번일 때도 있다.
내가 보도로 걸어도 단추는 한사코 흙길로 간다.
때로는 지갑이라도 떨어뜨린 것처럼 휙 돌아
왔던 길을 바쁘게 돌아갈 때도 있다.
마른 나뭇잎이 수북이 쌓인 길을 걸어갈 때에는
바스락바스락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좋은 듯 경쾌하게 뛰어간다.
어떤 구간에서는 코가 땅에 끌릴 것처럼 쳐 박고 걸어간다.
그런 곳에는 더러 개똥이 있었다.
무심히 걸을 때는 몰랐는데
산책로 옆 잡풀이 무성한 곳은 온통 개똥천지였다.
긴 의자가 있는 휴식 장소 주변 잔디밭에도 있었다.
큰 개의 것 작은 개의 것 때로 하얗게 산화한 것도 보였다.
심지어 누군가 밟아서 뭉개진 자국도 있었다.
집 안이 아닌, 집 밖에서 누고만 오면 실외배변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겠지.
수거봉투를 깜박하고 나왔거나
한 번 싸서 한 개 남은 봉투로 처리했는데 또 쌌거나
봉투가 찢어져서 새어 나온 줄 몰랐거나
그랬겠지. 설마.
하이힐의 기원이
파리 길거리에 널브러진 개똥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흔하고 더럽고 천해서 오히려 귀한 자식을 개똥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어찌됐든 개똥밭은 불편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 승이 좋다고 했던가?
이 세상에 살기 위해 개똥밭에 구르느니
차라리 개똥이 약에 쓰이는 날이 오면 좋겠다.
이왕이면 바이러스 치료제라면 더욱.
그러면 개똥이 좀 귀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