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를 앞두고 있을 때 당근을 통해 살림살이를 팔았었다.
보통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사촌언니 J는
2월 이사를 앞두고 당근을 통해 살림을 사들인다고 했다.
사고 싶은 물건이 내가 사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 나와 있다며
거래를 이어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알게 됐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뜻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깝기는 해도 인증은 되지 않아서 친구까지 동원해 연결해주었다.
J를 얘기하려면 독립적, 주체적, 자주적이라는 단어가 먼저 연상된다.
결국은 다 그 말이 그 말인 만큼
철들 무렵부터 드문드문 들리는 그녀의 얘기는 모두 그런류의 것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늦둥이 막내라서인지
우리 남매들은 사촌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특별히 어울려 지낸 기억은 없다.
그 중에도 J의 경우는 평범하지 않은 느낌이라 자주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열악했을 터였다.
자신의 진학과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더니
어느 날엔가는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고 들었다.
얼마 만에 돌아왔는지는 모르지만
돌아온 이후에는 전문직에서 일한다고 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고모의 말로는, 테라스에서 물이 보이는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그 말만 듣고 우리 모두는
구리시 어디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거라고 이해하고는 곧 잊었다.
사실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지난 최근에 와서 알게 되었다.
2년 전 J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을 때 그녀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J는 한강이 아닌 서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고 있었다.
이미 그 곳만 해도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도심은 한참 떠나 있는 느낌이었다.
멀리 소래포구가 건너다 보였다.
단지는 큰데 인적은 없었다.
이런데 살면 외롭지 않으냐고 물으니
어차피 일은 집에서 하고
사람들과 별로 어울릴 일이 없으니 이대로 좋다고 했다.
언니는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건강을 위한 것들에 소요한다고 했다.
매일 꾸준히 하는 운동이 첫 번 째고
두 번째는 천연 식재료였다.
J는 섭생에 대한 독특한 신념이 있기 때문에
모든 재료를 손수 준비한다고 했다.
같이 한 상에 마주 앉아도 언니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편식을 해야 한다는 편에 나도 손을 드는 쪽이라
언니의 그 것들이 수긍은 되지 않지만 그런 방법도 있나보다 한다.
그랬던 J가 이번에는 더 멀리 시골로 간다고 한다.
산 아래 마을이기는 하지만 띄엄띄엄 집이 있고
버스 타는 곳은 멀리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 곳이라고 했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도 있고
그 곳에 가면 모든 식재료는 자급자족할 생각이라고 했다.
의미 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도
이미 멀리 살고 있는데 왜 그리 멀리 가냐고 물으니
굳이 복잡한 도시에 살 이유가 없어서 가는 거라고 했다.
한 편 이해가 가면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와중에
언제 나도 한 번 가도 되냐고 물었다.
언니는 생긋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사람에 치이는 게 싫어서 가는데
거기서 까지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 나도 피식 웃었다.
어제는 겨울답게 눈이 쏟아졌다.
그 눈을 뚫고 버스를 갈아타며 스파이더맨을 보러갔다.
이미 자신의 정체가 온 천하에 드러난 피터가 닥터스트레인저를 찾아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워달라고 했다.
그러다 딱 한 사람 MJ 만 빼고, 라고 했다가
친구, 가족까지 확장되는 가운데 주문이 꼬여버리고 만다.
그로 인한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
피터는 다시 부탁을 한다.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워달라고.
의욕만 앞선 사춘기 남자아이 같던 피터의 결정에
순간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아득한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J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시간될 때 혹시 00지역이 가능한지 알아봐 주기.
언니는 지금, 사람들에게서 잊히기를 바라는 걸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늘 스스로 컨트롤 하는 언니를 보면서
용기가 없던 나는 그저 부럽기만 했었다.
과연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면, 나는?
영화를 보고 나면 포토프린트로 남기고
파일보다 사진으로 남기는 게 좋아 보여
요 며칠 즉석 사진기를 폭풍 검색하고 있다.
이삿짐 정리하다가 나온 40년 전 일기장을 버리지 못하고
신주단지처럼 침대 벙커에 넣어 매일 밤 깔고 잔다.
오래전 전화번호 수첩을 뒤적이다가
이미 바뀌어버린 전화번호와 이름을 보면서
얘는 지금 뭐하고 사나?
문득 궁금해질 때도 있다.
아, 나는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가는 곳 마다 자신의 흔적을 지우면서 사는 그런 시크한 캐릭터가 아니다.
조용한 곳에는, 살다가 한 번씩 놀러 가면 된다.
가끔 영화도 봐야하고 치킨도 시켜 먹어야 해서
나는 도시가 좋다.
사람들이 나를 오래오래 기억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