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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 숲 (4/10)

by 걍마늘
또다시 책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의심하는 마음과 굳이 사실을 들추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스파라거스를 뜯어먹고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진 않을까, 사라진 고양이가 걱정되어 장대비 속에서 온 동네를 뒤져 보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이후로 며칠간은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어디선가는 산사태가 나고 둑이 무너지고 개천이 범람했으나 여자는 언제나처럼 똑같은 자리에 앉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책을 읽고 돌아갔다. 없어진 책도 없고, 고양이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문을 활짝 열고 바닥이 반짝거리도록 물걸레질을 했다. 장마가 끝나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에어컨을 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모든 문이 서향으로 나 있어 오전은 시원한 편이다. 그래서 서점 청소나 서가 정리처럼 몸을 움직여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은 대체로 오전에 처리한다.

오후엔 책을 읽거나 퍼즐을 풀었다. 퍼즐을 풀고 나면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퍼즐은 명확한 답이 있다.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방사형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퍼즐의 세계는 일직선이다. 모든 근거가 한 방향을 가리킨다. 혼란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쾌감이 있다. 입구와 출구.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대답. 같은가 다른가.

“고양이가 안 보이네요.”

여자는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어딘가 평소와 다르다. 가슴 한복판에 노란 스마일리가 박힌 발랄한 옷부터가 그렇다. 청바지에 빨간색 스니커즈라든가 목덜미가 보이도록 산뜻하게 올려 묶은 머리도 제법 잘 어울린다.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하는 녀석입니다.”

읽고 있던 <등대로>를 한 옆으로 치웠다.

“버지니아 울프네요.”

어쩐지 민망해 퍼즐 잡지를 그 위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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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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