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나이아가라 폭포와 만나는 웅장한 계곡에 캐나다와 미국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였습니다. ‘레인보우 브리지’라고 불리는 다리인데요, 거대한 폭포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일 년 내내 무지개를 만드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죠. 나이아가라 폭포는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캐나다 전체와 미국 북부 지방을 뒤덮고 있던 삼 킬로미터 두께의 얼음이 녹으면서 형성된 지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백 미터가 넘는 깎아지른 절벽에는 장엄한 시간의 흔적이 새겨져 있죠. 다리 길이는 사백여 미터로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선이 중간 지점을 통과합니다. 다리의 절반은 캐나다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인 셈이죠. 실제로 그곳에서는 국경선을 넘나들 때마다 휴대폰 서비스 지역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캐나다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경선은 실제로 존재하는 선이 아니죠.”
와이퍼가 고장 났는지 쌓인 눈이 앞 유리를 완전히 덮었다. 트럭 안은 밤처럼 어둡고, 남은 기름은 채 한 칸이 안 되었다.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점심은 하루를 반으로 나누고 미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을 긋죠. 어느 시인은 말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습니까? 기르던 개나 고양이가 죽었을 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죠. 무지개를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생각한 것이죠. 지금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섬에 다리를 놓아드리고 싶네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시베리아 매머드를 들었다. 언젠가 초월과 넘을 수 없는 국경선을 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었다는 뉴스를 들은 날이었다. 통일이 되면 트럭을 몰고 포르투갈을 거쳐 아프리카 대륙까지 가보자고 들뜬 기분으로 이야기했었다. 그것은 그저 국경선을 넘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가능의 세계를 확장하고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매머드를 배낭에 넣고 시동을 껐다. 차로 한 시간 거리면 걸어서는 얼마나 걸릴까.
배낭을 메고 트럭에서 내렸다. 하늘에서 퍼붓는 눈과 바람에 날아가는 눈이 가로등이 켜진 허공에서 만나 소용돌이치며 반짝거린다. 세상은 시끄럽게 고요하고 사납게 아름다웠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외계의 행성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심호흡을 한 무한은 암스트롱이 된 심정으로 크게 한 발을 내디뎠다. 어느 날 갑자기 달에 떨어졌대도 일단은 나아가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운석이 떨어져도 빙하가 녹아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언제나처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길게 울리는 낮고 둔탁한 소리다. 지구가 쪼개지고 시원이 드러나는 소리 같았다. 산사태가 났나 싶어 돌아보니 교량 너머에서 집채만 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위아래로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그 부근에 트럭을 세워 두었다. 등 뒤에서 묵직한 매머드의 무게가 느껴졌다.
“할머니 어떡하지?”
빛나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눈이 창문보다 높게 쌓여 집으로 들어갈 수도 집에서 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119에 신고를 해 달라고 했으나 전화를 할 수 없어 난감하기는 영원도 마찬가지다. 생일 선물로 휴대폰을 받았으면 내심 기대하기도 했는데, 이미 늦었다. 전화를 하려면 피아노 학원이라든가 알사탕 할아버지의 구멍가게라든가 계란집으로 가야 했다. 학교로 돌아가든가.
복도로 나가 창문을 열어보았다. 빛나 말대로다. 골목은 조용했다. 그러나 무섭게 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몰아쳤다.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할머니가 집에 있다고?”
“아마도.”
빛나는 현관문 앞에 아직 신발을 신은 채로 서 있다. 예쁜 분홍색 운동화다. 그새 눈이 녹아 물웅덩이가 생겼다.
“집에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괜찮겠지?”
영원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리를 긁적이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빛나는 머뭇머뭇하다가 이내 신발을 벗고 따라 들어왔다.
“보일러 틀었어?”
“보일러? 아니.”
“춥지 않아?”
“어떻게 트는지 잘 모르는데.”
“난 아는데. 틀까?”
“그래.”
빛나가 보일러를 틀었다. 자기네 집과 구조가 비슷하다고 했다.
“여긴 별로 안 추워.”
영원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빛나는 다리를 옆으로 하고 앉아 발만 이불 속으로 쏙 집어넣는다.
“모르겠어. 아직 안 오셨나 봐.”
“엄마는? 들어올 시간 되지 않았어?”
기분이 이상했다. 어른이 없을 때 여자애와 단 둘이 있기는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부끄러운데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TV를 켰다. 아이들이 보는 채널은 유치해서, 어른들이 보는 채널은 이해가 안 가서, 다른 채널들은 분명치 않은 나름의 이유로 하나같이 재미가 없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뉴스에서 멈춘다. 눈길에 미끄러진 가스 탱크로리가 고속도로 교량 아래로 추락해 폭발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사고를 당하거나 고립되는 사람의 수는 빠르게 늘어나는데 구조 작업은 한없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인력도 부족했지만, 구조원 사고도 늘었다. 헬기도 제설차도 소방서와 군부대도 그저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얼음’을 외친 아이들처럼 누가 ‘땡’을 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너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빛나가 물었다.
“엄마?”
“아빠가 들으면 서운하겠네.”
영원은 살짝 당황했다.
“아빠도 좋아. 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빛나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빛나는 할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냈다. 엄마, 아빠가 따로따로 산다고도 했고 이혼했다고도 했다. 엄마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고도 했고 아빠가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빛나가 진짜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놀린 남자애 있었다. 자기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며 빛나의 아빠는 진짜 아빠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빛나가 울음을 터뜨렸고 영원은 화가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밑에 남자애가 깔려 있었다.
“고마웠어.”
“뭐가?”
“아니야.”
“뭔데?”
“어, 저게 뭐야?”
영원은 빛나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뿔피리.”
“피리?”
“상아로 만들었대. 코끼리 엄니, 알지? 예전에 아빠가 무슨 전시관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프리카 사람한테 받은 거래. 코끼리한테만 들리는 소리가 난다고 그랬어.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보다도 훨씬 멀리까지 간대.”
“불어 봤어?”
“아니.”
“불어 보자. 또 모르잖아, 눈코끼리가 올지도.”
영원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눈 덮인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하얀 코끼리를 상상했다. 누가 나타나면 재빨리 몸을 감추었다가, 사라지면 슬그머니 다시 나와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정말로 오면?”
뿔피리를 벽에서 떼어냈다.
“글쎄. 소원을 빌어 볼까?”
뾰족한 끝을 입에 대고 불었다. 희미하게 뿌 소리가 났다. 제대로 불기만 하면 굉장한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이리 줘 봐.”
빛나가 뿔피리를 뺏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둔 신발을 꿰어 신고 복도로 뛰쳐나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많은 눈이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복도 위로 쏟아졌다. 빛나는 영원이 입을 댔던 곳에 입을 대고 뿌우 하는, 조금 더 낮고 묵직하고 선명한 뿔피리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눈보라를 뚫고 날아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말소리가 닿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다정하게 그를 깨웠다. 세상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눈을 이불처럼 덮고 겨울잠을 자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