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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Nov 27. 2017

과정의 생략

비행기를 타는 것이 싫은 이유.

  나도 한때는 비행기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우선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려면 가능한 수단이 비행기, 혹은 배 밖에 없는걸 어찌하겠나. 1년 전의 나는 한 달에만 5개의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곤 했다. 비행기를 탈 때면 갇혀있던 나의 자유가 해방감이 되어 승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랬다.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곤 했다.


 장기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육로로 국경을 넘는다던가,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경험해본 적도 없거니와, 경험하려고 시도해 볼 수도 없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일주일쯤 되었을 때, 태국 꼬창에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가며 처음으로 국경을 넘었다.

어? 이렇게 나라를 이동하는 게 재밌는 거였나?

  아니, 사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단순히 비행기만 타면 해결되는 국가 이동을 육로로 하려면, 국제버스가 없는 구간일 경우 국경까지 이동 -> 국경 통과 -> 국경에서 해당 도시로 이동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국제버스가 있는 구간이더라도 하루 한편 정도밖에 없는 버스를 타기에는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걸리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쉬운 과정이라고 쉽게 말할 순 없다.

무려, 이런 버스아닌 버스를 탄다면 말이지.

  쉬운 과정은 아니었는데, 이 과정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국경과 국경 사이에 펼쳐진 지대에는 다양한 풍광이 펼쳐졌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과 산, 풍경, 그리고 국경 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구름, 바람. 사람이 만든 국경에서 자연은 결코 국경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바람과 공기, 강물과 구름은 국경에 관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항상 비행기를 타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어딘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가오는 신선함은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이동하면서 잠을 자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가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바라보는 것, 그 과정 속에 즐거움이 있었다. 이 과정이 여전하기를 바랐다.


  자연히 이런 경험 탓에, 나는 국경의 이동 과정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발생하는 장거리 이동의 과정에 대해 깊이 탐구하게 되었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건 비행 편 보다는 육로 이동을 선호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일찍 예매하면 버스보다 비행기가 더 싸."라고 말해주는 와중에도, 게으른 나는 일찍 예매할 가능성도 없거니와, 비행기를 타는 일은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타려고 하지 않았다.


과정의 생략은 생각보다 아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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